[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0년 8월 20일 (금) 오후 7시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합천평화의 집 원장에 취임한 윤여준 전 장관
▶정관용> 네. 과거 한나라당의 전략가, 당시 이회창 총재의 책사, 이렇게 불리어지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원폭피해 2세 환우들을 위한 시설인 합천평화의 집 원장으로 취임을 했다고 그러네요. 전화해 모셨습니다. 원장으로 취임하셨으니까 이제 윤여준 원장님, 이렇게 불러야 되겠네요. 윤여준 원장님?
▷윤여준>네.
▶정관용>안녕하세요?
▷윤여준>이 찜통더위 속에서 안녕하셨습니까.
▶정관용>난데없이 왜 또 거기로 가셨어요?
▷윤여준>저로서도 어떻게 보면 뜻밖인데요.
▶정관용>서울에서 민주시민교육이나 차세대 정치리더를 위한 교육 사업을 열심히 해 보겠다. 그랬던 게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윤여준>네. 하고 있었습니다. 하고 있었는데요. 2세 환후들을 지난 몇 년 동안 개인적으로 돕고 계신 분들이 계셨거든요. 그 조계종의 혜진 스님이라고 계신데요. 그 스님이 은사스님이신 지원 스님이라고 부산 문수사 주지스님이신데요. 그 두 분이 중심이 되셔서 개인적으로 이렇게 2세 환우들을 돕고 계셨어요. 그러다가 이걸 개인차원에서 할 일이 아니고 사회적으로 좀 널리 알리고 사회적인 모으는 게 필요하겠다. 이런 판단 하셨나 봐요. 그래서 평화의 집을 3월 1일 날 설립하시고 이걸 바로 법인체를 만들기 위해서 여러 가지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데 그 일을 저를 보고 맡아서 책임지고 해 달라고 그러시는 바람에 그리고 2세환우회의 간부 분이 오셔서 제가 선뜻 맡았습니다.
▶정관용>잠깐만요. 우선 합천평화의 집부터 소개를 해주시고 왜 맡게 되셨는지는 조금 있다 다시 한 번 듣고요. 합천평화의 집, 생소한 분들 많아요. 어떤 시설인가요?
▷윤여준>그게 2세 환우들이. ▶정관용>원자폭탄 피해를 받은 분들의 2세.
▷윤여준>그렇죠. 2세, 자녀분들이죠. ▶정관용>유전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
원폭피해자 후손들을 위한 평화의 집
▷윤여준>그렇습니다. 그분들이 전국적으로 2천 350명쯤 되는데 그분들이 서로 연락도 잘 안 되고 그분들을 돕는 일을 하려 해도 사무실 같은 것도 필요하고 그분들의 연락처도 있어야 되고 겸사겸사 그 필요성 때문에 합천에다가 조그마한 사무실 같은 공간을 얻어서요. 평화의 집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왜 평화라 이름을 붙였느냐 하면 히로시마도 평화의 도시라고 그러죠. 원자폭탄이라는 게 핵이면서 전쟁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평화를 희구하자.’ 하는 그런 뜻으로 평화의 집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정관용>네. 여기에 환자분들이 같이 보호받고 하는 그런 시설인가요? 아니면?
▷윤여준>요양시설은 아니고요. 앞으로 요양시설은 만들어야 됩니다.
▶정관용>네. 일종에 그러니까 활동 근거지 같은...
▷윤여준>네. 근거지 같은 아주 조그마한 사무실입니다.
▶정관용>그렇군요. 그런데 그게 왜 하필 합천에 들어섰을까요?
원폭 피해자 중 다수가 합천 사람들
▷윤여준>히로시마의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거기서 희생되신 분들 다수가 합천 분들이었다고 그래요. 왜 그랬는지 뚜렷한 이유는 밝혀진 게 없지만 제 짐작컨대 아마 일본 그때 당국이 징용을 많이 끌어왔잖아요. 인력배치계획에 나름대로 있었겠죠. 아마도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히로시마에 계신 분들 중에 합천서 징용으로 가신 분들이 거기 몰려있었나 봐요. 그래가지고 합천 분들이 희생자의 70%가 된다고 그러거든요. 그래서 이제 합천이 말하자면 일본의 히로시마처럼 한국 원폭희생자가 가장 많은 고장이 됐죠.
▶정관용>그리고 그 돌아가시지 않고 본국에 귀국하신 분들은 다시 고향인 합천으로 오셨겠군요.
▷윤여준>다 오신 건 아니고요. 다 흩어져 사시는데 그래도 다 합천태생이시거나 부모님이 합천이시거나 다 합천 출신이죠.
▶정관용>그렇군요. 일종의 뿌리와 같은...
▷윤여준>합천에 원폭으로 희생된 분들의 위령각이 있습니다. 그 위령각에서 해마다 8월 6일 날,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 그날 아침에 위령제와 추모식을 합니다.
▶정관용>우리가 사실 많이 잊고 있는데 그 당시에 원폭피해를 받은 숫자도 어마어마하죠?
▷윤여준>그렇습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두 도시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지 않습니까. 그때 희생된 일본 사람들의 수가 약 23만 된다고 그러거든요. 그 당시에 한국인 희생자 수는 나가사키에 거주하던 한국인이 한 5만, 나가사키에 2만, 히로시마에 5만, 합해 7만이 됐다 그럽니다. 그런데 그 중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4만 명이 희생이 되고 일본 희생자보다 10% 정도 넘는 거죠. 3만명이 생존해 있었는데 해방되고 나서 그 중에 2만 3천명이 귀국을 하고 7천명은 그냥 일반에 남아 있었다고 그럽니다.
▶정관용>네. 귀국하신 2만 3천명 분들 가운데서도 거의 다 작고하시지 않으셨을까요?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의 생존률은 10%
▷윤여준>그렇습니다. 지금 생존해 계신 분들 대개 연세가 85정도 되셨으니까 그리고 이제 생존율이 일본 사람의 경우에는 원자폭탄 떨어졌을 때 생존했던 분들 중에 아직까지 생존한 분들 생존율이 40%가 된다고 그러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생존율이 10%밖에 안 됩니다. 그만큼 1세분들이 귀국하셔서 6.25도 겪었지만 많은 어려움 때문에 오래사시지 못했다는 얘기가 되겠죠.
▶정관용>이분들을 지원하는 이런 게 있지 않습니까?
▷윤여준>네. 1세들은 70년대 초반부터 일본에서 법정투쟁을 해가지고 한 30년에 걸쳐서 투쟁을 했습니다. 그래서 2000년대 초반부터 일본으로부터 보상을 받기 시작했죠. 그래서 일인당 30만원 정도의 월. 일본정부에서 보상금이 나오고 한국 정부에서도 월 10만원씩 이제 진료비 명분으로 지원을 하고 또 합천에 원폭피해자를 위한 복지기관이 있습니다. 76년도에 건립된 것인데 그 복지회관을 건립한 돈은 일본 분들이 모금을 해서 보내줘 가지고 건립한 것이고. 그 운영비가 있지 않습니까. 2005년도부터 우리 정부에서 연 한 14억 정도 되는 돈을 정부에서 부담하고 있습니다. 1세분들은 나름대로 일본과 한국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는데. ▶정관용>도움 받는다는 것도 말씀 들어보면 2000년대 들어와서 아닙니까.
▷윤여준>그렇죠. 그렇죠. 일본에서는 30년에 걸친 법정투쟁을 한 겁니다.
▶정관용>오랫동안 방치돼 계셨군요. 그분들이.
▷윤여준>그렇습니다. 그런데 2세들은 그나마도 2세분들은 유전적인 각종 질병을 많이 앓는데도 불구하고 어디로부터도 제도적인 지원을 받는 데가 없습니다.
▶정관용>지금 현재도 그래요?
▷윤여준>네. 전혀 없습니다.
▶정관용>얼마 전에 그런 법률이 하나 있었던 거 같은데요.
▷윤여준>아니요. 특별법을 국회 발의가 돼 있는데 지금 예산이 수반되는 법이기 때문에 정부가 선뜻 마음이 있어도 하기가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다른 또 어려운 분들도 많이 계시니까 형평성의 문제도 있고.
▶정관용>법률이 통과가 안 된 상태로군요. ▷윤여준>네. 이게 17대 국회 때에도 발의가 됐다가 처리가 안 되는 바람에 임기가 끝나고 자동 폐기 됐고 18대 국회가 개원되고 나서 또 발의가 됐는데 지금도 그냥 국회 보건복지부에 계류돼 있는 상태입니다. 쉽게 만들어질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정관용>다시 정리하면 원폭피해 2세로 지금 현재 질환을 앓고 계신 것으로 확인된 분들이 아까 2천 340명?
▷윤여준>2천 350명쯤 됩니다.
▶정관용>이보다 훨씬 더 많겠죠? 그런데 사실은.
▷윤여준>그렇죠. 왜냐면 지금 2세분들을 아직 정확한 실태조사를 못해서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1만 여명 정도 된다고 보거든요. 그 중에 우리가 파악한 게 그 정도 된다는 겁니다.
▶정관용>예. 어느 정도 고통을 받고 계세요? 그런 분들이.
▷윤여준>그게 사람 따라 차이가 많은데요. 우선 이게 이제 질병을 앓고 있으니까 정상적인 직장생활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치료 받아야죠. 일자리 얻기 어렵죠. 이중고죠. 생활이 아주 어렵습니다.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분은 이게 3세까지 내려가 가지고. 전혀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는 자녀까지 돌봐야 되는 그런 분도 있습니다. 사정이 아주 딱해요.
피해자라고 떳떳하게 밝히지 못했던 까닭
▶정관용>제가 듣기로는 ‘내가 원폭피해 2세다.’ 그래서 이런 질환을 앓고 있다고 하는 것이 세상에 공개되기 시작된 거도 불과 얼마 안 된다면서요. 그 전에는 왜 그분들이 쉬쉬했을까요?
▷윤여준>왜 그러냐 하면요. 그게 알려지면 생활상의 불이익을 받을까봐 걱정한 거죠. 예를 들면 결혼이 잘 어렵다든지 취직이 잘 안 된다든지 당장 어려움이 닥치지까 가능하면 그걸 밝히기를 꺼렸던 거죠. 그러다가 2005년도부터 생각들이 좀 바뀌었는데 바뀌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정관용>어떤 겁니까?
▷윤여준>원폭피해자 2세로 심각한 질환을 앓고 있던 김형율이라는 젊은이가 있었는데요. 그 젊은이가 3년에 걸쳐서 그 아픈 몸을 끌고 모든 관계 자료를 모으고 자기 자신이 연구를 하고 또 호소를 하고 특별법도 만들고 이런 활동을 했습니다. 그걸 계기로 2세분들이 생각이 좀 바뀌어서 이제는 한 분 한 분 이렇게 스스로 밝히는 그런 분위기가 생겼습니다.
▶정관용>몸은 아픈데 누구한테 하소연도 못하고 어디서 도움도 못 받고. 참 눈앞에 그려지네요. 얼마나 딱한 처지인데. 그런 분들을 불교계에 계신 몇몇 스님들이 도와주시다가 이제 좀 본격화 하자.
▷윤여준>그렇죠. 개인 차원의 돕는다는 것은 한계도 있고 또 이게 일의 성격상 그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신 거죠.
▶정관용>그래서 원장이란 짐을 떠맡으셨는데 어떤 일들을 하실 겁니까?
▷윤여준>우선 이게 딱 출발하는 거니까요.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우선은 이게 법인을 만드는 게 급하고요. 왜냐면 법인을 만들어야 외부로터 저희가 기부를 받을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기부를 받아야 예산을 가지고 실태조사부터 한번 해 보려고 그러고요. 또 2세들을 위해서 요양시설도 짓고 직업훈련원도 만들고 하려면 땅도 있어야 되고 시설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처음서부터 정부보고 다 해달라고 하기 좀 그러니까 정부도 재정이 어렵지 않습니까. 우리 스스로 노력을 먼저 하자. 그래서 합천에다가 땅을 5천평 정도 부지를 사려고 그럽니다. 그러면 거기 땅 한 평 값이 평균 5만원 하니까 그래서 법인이 되고 나면 제일 먼저 할 일이 땅 1평 사 모으기 운동을 하려고 그럽니다. 5만원을 주시면 1평 사는 거고 50만원 주시면 10평 사는 거고 그렇습니다.
▶정관용>법인 만들어 모금활동 펼치고 요양시설, 직업훈련원 등등으로 확장시켜 나가겠다.
▷윤여준>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관용>잘 알겠습니다. 정말 저희가 다 잊고 버려뒀던 분들인데 큰 도움이 좀 돼주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윤여준>기독교 방송이 많이 좀 도와주십시오.
▶정관용>네. 윤여준 원장, 고맙습니다.
▷윤여준>네. 감사합니다.
▶정관용>합천평화의 집 신임원장 취임하신 윤여준 전 장관 만나봤습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0년 8월 20일 (금) 오후 7시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합천평화의 집 원장에 취임한 윤여준 전 장관
▶정관용> 네. 과거 한나라당의 전략가, 당시 이회창 총재의 책사, 이렇게 불리어지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원폭피해 2세 환우들을 위한 시설인 합천평화의 집 원장으로 취임을 했다고 그러네요. 전화해 모셨습니다. 원장으로 취임하셨으니까 이제 윤여준 원장님, 이렇게 불러야 되겠네요. 윤여준 원장님?
▷윤여준>네.
▶정관용>안녕하세요?
▷윤여준>이 찜통더위 속에서 안녕하셨습니까.
▶정관용>난데없이 왜 또 거기로 가셨어요?
▷윤여준>저로서도 어떻게 보면 뜻밖인데요.
▶정관용>서울에서 민주시민교육이나 차세대 정치리더를 위한 교육 사업을 열심히 해 보겠다. 그랬던 게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윤여준>네. 하고 있었습니다. 하고 있었는데요. 2세 환후들을 지난 몇 년 동안 개인적으로 돕고 계신 분들이 계셨거든요. 그 조계종의 혜진 스님이라고 계신데요. 그 스님이 은사스님이신 지원 스님이라고 부산 문수사 주지스님이신데요. 그 두 분이 중심이 되셔서 개인적으로 이렇게 2세 환우들을 돕고 계셨어요. 그러다가 이걸 개인차원에서 할 일이 아니고 사회적으로 좀 널리 알리고 사회적인 모으는 게 필요하겠다. 이런 판단 하셨나 봐요. 그래서 평화의 집을 3월 1일 날 설립하시고 이걸 바로 법인체를 만들기 위해서 여러 가지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데 그 일을 저를 보고 맡아서 책임지고 해 달라고 그러시는 바람에 그리고 2세환우회의 간부 분이 오셔서 제가 선뜻 맡았습니다.
▶정관용>잠깐만요. 우선 합천평화의 집부터 소개를 해주시고 왜 맡게 되셨는지는 조금 있다 다시 한 번 듣고요. 합천평화의 집, 생소한 분들 많아요. 어떤 시설인가요?
▷윤여준>그게 2세 환우들이. ▶정관용>원자폭탄 피해를 받은 분들의 2세.
▷윤여준>그렇죠. 2세, 자녀분들이죠. ▶정관용>유전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
원폭피해자 후손들을 위한 평화의 집
▷윤여준>그렇습니다. 그분들이 전국적으로 2천 350명쯤 되는데 그분들이 서로 연락도 잘 안 되고 그분들을 돕는 일을 하려 해도 사무실 같은 것도 필요하고 그분들의 연락처도 있어야 되고 겸사겸사 그 필요성 때문에 합천에다가 조그마한 사무실 같은 공간을 얻어서요. 평화의 집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왜 평화라 이름을 붙였느냐 하면 히로시마도 평화의 도시라고 그러죠. 원자폭탄이라는 게 핵이면서 전쟁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평화를 희구하자.’ 하는 그런 뜻으로 평화의 집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정관용>네. 여기에 환자분들이 같이 보호받고 하는 그런 시설인가요? 아니면?
▷윤여준>요양시설은 아니고요. 앞으로 요양시설은 만들어야 됩니다.
▶정관용>네. 일종에 그러니까 활동 근거지 같은...
▷윤여준>네. 근거지 같은 아주 조그마한 사무실입니다.
▶정관용>그렇군요. 그런데 그게 왜 하필 합천에 들어섰을까요?
원폭 피해자 중 다수가 합천 사람들
▷윤여준>히로시마의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거기서 희생되신 분들 다수가 합천 분들이었다고 그래요. 왜 그랬는지 뚜렷한 이유는 밝혀진 게 없지만 제 짐작컨대 아마 일본 그때 당국이 징용을 많이 끌어왔잖아요. 인력배치계획에 나름대로 있었겠죠. 아마도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히로시마에 계신 분들 중에 합천서 징용으로 가신 분들이 거기 몰려있었나 봐요. 그래가지고 합천 분들이 희생자의 70%가 된다고 그러거든요. 그래서 이제 합천이 말하자면 일본의 히로시마처럼 한국 원폭희생자가 가장 많은 고장이 됐죠.
▶정관용>그리고 그 돌아가시지 않고 본국에 귀국하신 분들은 다시 고향인 합천으로 오셨겠군요.
▷윤여준>다 오신 건 아니고요. 다 흩어져 사시는데 그래도 다 합천태생이시거나 부모님이 합천이시거나 다 합천 출신이죠.
▶정관용>그렇군요. 일종의 뿌리와 같은...
▷윤여준>합천에 원폭으로 희생된 분들의 위령각이 있습니다. 그 위령각에서 해마다 8월 6일 날, 원자폭탄이 떨어진 날, 그날 아침에 위령제와 추모식을 합니다.
▶정관용>우리가 사실 많이 잊고 있는데 그 당시에 원폭피해를 받은 숫자도 어마어마하죠?
▷윤여준>그렇습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두 도시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지 않습니까. 그때 희생된 일본 사람들의 수가 약 23만 된다고 그러거든요. 그 당시에 한국인 희생자 수는 나가사키에 거주하던 한국인이 한 5만, 나가사키에 2만, 히로시마에 5만, 합해 7만이 됐다 그럽니다. 그런데 그 중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4만 명이 희생이 되고 일본 희생자보다 10% 정도 넘는 거죠. 3만명이 생존해 있었는데 해방되고 나서 그 중에 2만 3천명이 귀국을 하고 7천명은 그냥 일반에 남아 있었다고 그럽니다.
▶정관용>네. 귀국하신 2만 3천명 분들 가운데서도 거의 다 작고하시지 않으셨을까요?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의 생존률은 10%
▷윤여준>그렇습니다. 지금 생존해 계신 분들 대개 연세가 85정도 되셨으니까 그리고 이제 생존율이 일본 사람의 경우에는 원자폭탄 떨어졌을 때 생존했던 분들 중에 아직까지 생존한 분들 생존율이 40%가 된다고 그러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생존율이 10%밖에 안 됩니다. 그만큼 1세분들이 귀국하셔서 6.25도 겪었지만 많은 어려움 때문에 오래사시지 못했다는 얘기가 되겠죠.
▶정관용>이분들을 지원하는 이런 게 있지 않습니까?
▷윤여준>네. 1세들은 70년대 초반부터 일본에서 법정투쟁을 해가지고 한 30년에 걸쳐서 투쟁을 했습니다. 그래서 2000년대 초반부터 일본으로부터 보상을 받기 시작했죠. 그래서 일인당 30만원 정도의 월. 일본정부에서 보상금이 나오고 한국 정부에서도 월 10만원씩 이제 진료비 명분으로 지원을 하고 또 합천에 원폭피해자를 위한 복지기관이 있습니다. 76년도에 건립된 것인데 그 복지회관을 건립한 돈은 일본 분들이 모금을 해서 보내줘 가지고 건립한 것이고. 그 운영비가 있지 않습니까. 2005년도부터 우리 정부에서 연 한 14억 정도 되는 돈을 정부에서 부담하고 있습니다. 1세분들은 나름대로 일본과 한국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는데. ▶정관용>도움 받는다는 것도 말씀 들어보면 2000년대 들어와서 아닙니까.
▷윤여준>그렇죠. 그렇죠. 일본에서는 30년에 걸친 법정투쟁을 한 겁니다.
▶정관용>오랫동안 방치돼 계셨군요. 그분들이.
▷윤여준>그렇습니다. 그런데 2세들은 그나마도 2세분들은 유전적인 각종 질병을 많이 앓는데도 불구하고 어디로부터도 제도적인 지원을 받는 데가 없습니다.
▶정관용>지금 현재도 그래요?
▷윤여준>네. 전혀 없습니다.
▶정관용>얼마 전에 그런 법률이 하나 있었던 거 같은데요.
▷윤여준>아니요. 특별법을 국회 발의가 돼 있는데 지금 예산이 수반되는 법이기 때문에 정부가 선뜻 마음이 있어도 하기가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다른 또 어려운 분들도 많이 계시니까 형평성의 문제도 있고.
▶정관용>법률이 통과가 안 된 상태로군요. ▷윤여준>네. 이게 17대 국회 때에도 발의가 됐다가 처리가 안 되는 바람에 임기가 끝나고 자동 폐기 됐고 18대 국회가 개원되고 나서 또 발의가 됐는데 지금도 그냥 국회 보건복지부에 계류돼 있는 상태입니다. 쉽게 만들어질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정관용>다시 정리하면 원폭피해 2세로 지금 현재 질환을 앓고 계신 것으로 확인된 분들이 아까 2천 340명?
▷윤여준>2천 350명쯤 됩니다.
▶정관용>이보다 훨씬 더 많겠죠? 그런데 사실은.
▷윤여준>그렇죠. 왜냐면 지금 2세분들을 아직 정확한 실태조사를 못해서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1만 여명 정도 된다고 보거든요. 그 중에 우리가 파악한 게 그 정도 된다는 겁니다.
▶정관용>예. 어느 정도 고통을 받고 계세요? 그런 분들이.
▷윤여준>그게 사람 따라 차이가 많은데요. 우선 이게 이제 질병을 앓고 있으니까 정상적인 직장생활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치료 받아야죠. 일자리 얻기 어렵죠. 이중고죠. 생활이 아주 어렵습니다.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분은 이게 3세까지 내려가 가지고. 전혀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는 자녀까지 돌봐야 되는 그런 분도 있습니다. 사정이 아주 딱해요.
피해자라고 떳떳하게 밝히지 못했던 까닭
▶정관용>제가 듣기로는 ‘내가 원폭피해 2세다.’ 그래서 이런 질환을 앓고 있다고 하는 것이 세상에 공개되기 시작된 거도 불과 얼마 안 된다면서요. 그 전에는 왜 그분들이 쉬쉬했을까요?
▷윤여준>왜 그러냐 하면요. 그게 알려지면 생활상의 불이익을 받을까봐 걱정한 거죠. 예를 들면 결혼이 잘 어렵다든지 취직이 잘 안 된다든지 당장 어려움이 닥치지까 가능하면 그걸 밝히기를 꺼렸던 거죠. 그러다가 2005년도부터 생각들이 좀 바뀌었는데 바뀌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정관용>어떤 겁니까?
▷윤여준>원폭피해자 2세로 심각한 질환을 앓고 있던 김형율이라는 젊은이가 있었는데요. 그 젊은이가 3년에 걸쳐서 그 아픈 몸을 끌고 모든 관계 자료를 모으고 자기 자신이 연구를 하고 또 호소를 하고 특별법도 만들고 이런 활동을 했습니다. 그걸 계기로 2세분들이 생각이 좀 바뀌어서 이제는 한 분 한 분 이렇게 스스로 밝히는 그런 분위기가 생겼습니다.
▶정관용>몸은 아픈데 누구한테 하소연도 못하고 어디서 도움도 못 받고. 참 눈앞에 그려지네요. 얼마나 딱한 처지인데. 그런 분들을 불교계에 계신 몇몇 스님들이 도와주시다가 이제 좀 본격화 하자.
▷윤여준>그렇죠. 개인 차원의 돕는다는 것은 한계도 있고 또 이게 일의 성격상 그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신 거죠.
▶정관용>그래서 원장이란 짐을 떠맡으셨는데 어떤 일들을 하실 겁니까?
▷윤여준>우선 이게 딱 출발하는 거니까요.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우선은 이게 법인을 만드는 게 급하고요. 왜냐면 법인을 만들어야 외부로터 저희가 기부를 받을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기부를 받아야 예산을 가지고 실태조사부터 한번 해 보려고 그러고요. 또 2세들을 위해서 요양시설도 짓고 직업훈련원도 만들고 하려면 땅도 있어야 되고 시설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처음서부터 정부보고 다 해달라고 하기 좀 그러니까 정부도 재정이 어렵지 않습니까. 우리 스스로 노력을 먼저 하자. 그래서 합천에다가 땅을 5천평 정도 부지를 사려고 그럽니다. 그러면 거기 땅 한 평 값이 평균 5만원 하니까 그래서 법인이 되고 나면 제일 먼저 할 일이 땅 1평 사 모으기 운동을 하려고 그럽니다. 5만원을 주시면 1평 사는 거고 50만원 주시면 10평 사는 거고 그렇습니다.
▶정관용>법인 만들어 모금활동 펼치고 요양시설, 직업훈련원 등등으로 확장시켜 나가겠다.
▷윤여준>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관용>잘 알겠습니다. 정말 저희가 다 잊고 버려뒀던 분들인데 큰 도움이 좀 돼주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윤여준>기독교 방송이 많이 좀 도와주십시오.
▶정관용>네. 윤여준 원장, 고맙습니다.
▷윤여준>네. 감사합니다.
▶정관용>합천평화의 집 신임원장 취임하신 윤여준 전 장관 만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