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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도 정기검진이 필요하다...전통불교문화원

정진공 2011. 10. 19. 17:03

[김정운의 남자에게] 마음에도 정기검진이 필요하다!

등록 : 20111017 19:05 | 수정 : 2011101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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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외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버텨온 내 마음이 아무 이상도
없을 것이란 황당한 믿음이라니

» 김정운 명지대 교수·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죽는 줄 알았다. 이런 줄 알았다면 절대 안 했다. 참 예쁜 간호사가 친절하게 안내할 때부터 알아챘어야 했다. 그 젊고 예쁜 간호사가 검사 과정에 대해 설명하다가 날 알아보고 반가워할 때부터 긴장했어야 했다. 느닷없이 내 책을 들이밀며, 팬이라며 사인을 부탁할 때부터 의심했어야 했다.

사십 후반부터는 정기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에 아무 생각 없이 동의했다. ‘누어도 누어도 시원치 않은…’으로 시작하는, 왠지 껄끄러운 그 광고 때문일 수도 있겠다. 초음파 검사라고 해서 더 안심했던 것 같다. 그냥 젤리 비슷한 것 바르고 동그란 막대기로 피부를 문대기만 하는 초음파 검사라면 아무 부담 없을 것 같았다. 난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전립선 검사에 동의했다.

그 친절한 간호사는 뒤가 트인 바지를 주면서 갈아입으라고 했다. 대장 검사를 할 때 입는 바지였다. 맨정신에, 신청도 안 한 무슨 대장 검사냐고 했다. 아니란다. 전립선 검사는 원래 그렇게 하는 거란다. 그 바지 허리춤을 잡고 나오니 몸을 구부린 자세로 옆으로 누워 다리를 들어올린 아주 흉한 자세로 있으라고 한다. 잠시 후 퉁명스럽게 생긴 젊은 의사가 들어왔다. 아무 말 없이, 아주 무표정하게 그 초음파 막대기를 뒤로부터 막 찔러 넣었다.

아, 그 예쁘고, 친절하고, 내 팬이라며 사인까지 받아간 그 간호사만 없었더라도 이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그녀는 시종일관 그 상냥한 표정으로 내 눈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자꾸 몸에 힘이 들어간다. 퉁명스런 젊은 의사는 괄약근에 그렇게 힘을 주면 안 된다며 이젠 아주 짜증까지 낸다.(젠장, 예쁜 여자 앞에서 니가 한번 당해 봐라!) 막대기를 빼는 것도 아주 못되게 뺐다. 내 전립선은 아주 양호하다는 설명을 성의없이 내뱉곤 이내 나가버렸다.

병원을 나서며 생각했다. 소변 줄기가 막히는 것도 그렇게 두려워 그 난감한 전립선 검사조차 마다 않는데, 온통 상처투성이인 마음에는 왜 정기검진이 없을까? 건강검진뿐만이 아니다. 자동차도 때 되면 정기검사 받는다. 길바닥에 느닷없이 차가 서버리는 황당한 상황이 두려워 아주 철저히 닦고, 조이고, 기름 친다. 그러나 내 마음이 도대체 어떤 상태인지 검사해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토록 힘들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지금까지 버텨온 내 마음이 아무 이상 없을 것이라는 그 황당한 믿음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내 마음이 제대로 작동하는가를 판단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마음의 건강은 하루에 도대체 몇 번이나 기분 좋게 웃었던가로 판단한다. 우리는 즐겁고 행복하려고 산다. 행복과 재미의 신체적 증상은 웃음이다. 그런데 종일토록 제대로 웃었던 기억이 전혀 없다면 그건 뭔가 분명 잘못된 거 아닌가? 기껏해야 비웃음, 쓴웃음 아니던가? 마음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데, 어찌 몸이 제대로 작동하겠는가? 마음의 질병은 반드시 몸의 질병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심신의학’(사이코소매틱스·psychosomatics)의 핵심이다.

견디기 힘들게 마음이 아프면 심리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하겠다고 버티거나, 또는 그저 참고 견디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한심한 경우는 없다. 스스로 전립선 검사를 하겠다고 몸을 뒤틀어 막대기를 뒤로 쑤셔 넣으려는 것보다 무식한 짓이다.

그래서 든 생각이다. 마음의 건강검진도 의료복지 차원으로 의무화해야 하는 거다. 이젠 그럴 때가 됐다. 결국은 마음의 문제라고 다들 이야기하면서, 사방에 이토록 마음이 아프다고 아우성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