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8.10 03:12
능행 스님, 1만5000명 후원 받아 호스피스 병원 지어
임종 직전 비구 스님 간청에 병원 건립하기로 약속… 울산에 10월 완공 예정
"스스로 '자(自)', 있을 '재(在)', 그래서 자재병원이에요. 생사(生死)로부터, 모든 고통과 욕망으로부터 자유자재롭기를 바라는 이름이지요."
중생의 고통을 껴안는 것이 출가자의 삶이라지만, 능행(能行·53) 스님은 유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사람들과 인연이 깊었다. 스님은 2000년 충북 청원에 불교계 첫 독립형 호스피스 기관 정토마을을 세웠고, 오는 10월엔 울산에 불교계 첫 호스피스 전문 병원인 자재병원 완공을 앞두고 있다. 비구니 스님 홀로 세운 뜻에 후원자 1만5000여명이 함께해 가능한 일이었다.
◇"병원 하나 세워주소"
"병원 하나 세워주소." 15년 전 한 비구 스님의 이 한마디가 자재병원 건립의 시작이었다. 1997년, 호스피스 활동을 하던 스님에게 서울의 한 천주교계 병원 수녀님이 전화를 걸어 왔다. "아무래도 스님 같은 환자가 있는데 입을 꼭 닫고 있어요." 당시 능행 스님은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어 호스피스 활동을 접을 생각이었다. 스님은 "이 사람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서울로 갔다. 키 크고 비쩍 마른 남자가 돌아누워 있는데, "스님" 하고 불렀더니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30년 넘게 선방(禪房)에서 수행만 한 비구 스님이었다. 폐암 말기인데, 거둬주는 곳이 없어 천주교 병원이 돌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스님은 "불자(佛子)가 1000만이나 되는데 불교인들이 죽을 병원 하나가 없다. 스님들이 편히 죽어갈 수 있는 병원 하나 지어달라"며 능행 스님에게 매달렸다. 며칠간 눈을 감지 못하던 스님은 "그러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눈을 감았다.
중생의 고통을 껴안는 것이 출가자의 삶이라지만, 능행(能行·53) 스님은 유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사람들과 인연이 깊었다. 스님은 2000년 충북 청원에 불교계 첫 독립형 호스피스 기관 정토마을을 세웠고, 오는 10월엔 울산에 불교계 첫 호스피스 전문 병원인 자재병원 완공을 앞두고 있다. 비구니 스님 홀로 세운 뜻에 후원자 1만5000여명이 함께해 가능한 일이었다.
◇"병원 하나 세워주소"
"병원 하나 세워주소." 15년 전 한 비구 스님의 이 한마디가 자재병원 건립의 시작이었다. 1997년, 호스피스 활동을 하던 스님에게 서울의 한 천주교계 병원 수녀님이 전화를 걸어 왔다. "아무래도 스님 같은 환자가 있는데 입을 꼭 닫고 있어요." 당시 능행 스님은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어 호스피스 활동을 접을 생각이었다. 스님은 "이 사람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서울로 갔다. 키 크고 비쩍 마른 남자가 돌아누워 있는데, "스님" 하고 불렀더니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30년 넘게 선방(禪房)에서 수행만 한 비구 스님이었다. 폐암 말기인데, 거둬주는 곳이 없어 천주교 병원이 돌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스님은 "불자(佛子)가 1000만이나 되는데 불교인들이 죽을 병원 하나가 없다. 스님들이 편히 죽어갈 수 있는 병원 하나 지어달라"며 능행 스님에게 매달렸다. 며칠간 눈을 감지 못하던 스님은 "그러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눈을 감았다.
- 오는 10월 불교계 첫 호스피스 전문 의료기관인‘자재병원’완공을 앞둔 능행 스님은“임종을 앞둔 환자를 돌보는 정토마을을 운영하고 이 병원을 세우는 동안 금액으로 헤아릴 수 없는 큰 마음을 너무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능행 스님은 요즘 임종을 앞둔 환자를 돌보면서(위 사진), 틈틈이 병원 공사 현장을 둘러본다(아래 사진). /정토마을 제공
30대 초반에 출가한 능행 스님은 출가 직후부터 임종을 앞둔 환자를 많이 돌봤다. 자신의 출가를 적극 지지하고 도왔던 재가자 부부 중 남편이 췌장암으로 숨을 거두기까지 곁에서 지켜본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로도 결식 아동과 독거 노인, 무의탁 환자를 돌보던 그는 "내 뜻과 상관없이, 자꾸만 죽어가는 사람을 더 많이 만나게 되더라"고 했다. '호스피스'라는 개념도 생소했던 때였다. 하지만 "불법(佛法) 공부는 천천히 하더라도 이 사람들 곁에 머물러야겠다"고 결심했다.
서울·부산 등 대도시 병원의 행려병동, 음성 꽃동네 같은 시설들까지 스님을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부산의 한 행려병동에서 덩치가 산만 한 남자 환자를 만났지요. 거리에서 쓰러져 실려왔는데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간암이 진행된 상태였어요. 배에 물이 차서 산처럼 불러온 채로, 내 손을 잡고 '엄마, 가지 마' 하며 매달리는데…." 그 손을 맞잡아주며 스님은 "그래 있을게, 떠나지 않을게"하고 답했다.
◇정토마을, 그리고 자재병원
2000년 3월 첫 환자를 받은 정토마을은 늘 자리가 모자랐다. "개원 첫해 137명이 정토마을에서 돌아가셨는데, 순서를 기다리다 먼저 가신 분은 훨씬 더 많았지요. 그걸 1~2년 겪다 보니 도저히 안 되겠더군요." 2002년 가을, 병원을 짓기로 마음먹었다. 1000일 기도, '탁발'(모금)도 시작했다. "1년에 15만㎞씩 차를 몰았죠. 후원을 해줄 만한 곳이면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곳이 없어요."
후원을 부탁하는 강연을 했던 한 성당의 천주교 신자들은 가진 돈을 다 털어 소쿠리에 담아 주기도 했다. 물론 불자들과 스님들 도움이 가장 컸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원로의원 성수(性壽) 스님은 지난 4월 입적 직전 후원금을 보내왔다. 노스님이 수중에 있는 돈을 1000원짜리까지 모두 넣어 싸맨 손수건 안에는 '열심히 해주시게'라고 쓴 편지도 들어 있었다. "어른 스님들 중에 그렇게 도와주지 않은 분이 거의 없습니다. 금액으로 헤아릴 수 없는 큰 마음을 너무나 많이 받았어요. 무한한 자비심에 늘 감사하며 살지요."
자재병원은 올 10월 건물이 완공되면 내부 시설 등을 갖춰 내년 초 108병상 규모로 개원할 예정이다. 스님은 "뜻있는 봉사자들이 무보수로 간병을 담당하고, 의료진도 가능한 한 자원봉사자를 모아 운영해 나갈 생각이지만 아직 사람도 돈도 턱없이 모자란다"면서도 "이것저것 재고 생각하면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