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와닿는 이야기

반야사,ㅡ금선사, 용문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스탭!! 나는 자랑스런 ~~~

정진공 2015. 11. 28. 17:12

불교신문·한국불교문화사업단 공동기획

   
템플스테이 스텝들은 지친 심신 이끌고 템플스테이를 노크한 이들을 ‘최고 고객’으로 보듬는다. 함께 웃고 울면서 아픈 상처 내려놓고 다시 세상 속으로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다독여 준다. 삼보일배를 함께 하고 문화유산을 답사하고 맑은 차 한잔 나누면서 말이다.

서울대 법대 출신 거사 

날마다 조석예불 108배   

편안한 환경 조성 ‘중시’

 

‘국제차문화 박사’ 보살 

설레고 가슴 벅찬 즐거움   

참나 찾는 이에 가교역할

 

실무만 7년 ‘베테랑 팀장’ 

함께 땀흘리며 삼보일배   

우리모두 둘 아님 깨우쳐 

“어렵사리 절에 온 ‘손님’을 정성껏 봉양한 게 전부인데, 가끔 템플스테이에 온 어르신들이 저를 사위 삼겠다고 하실 때가 있어요. 제 나이 올해 쉰하나에 열아홉살 딸이 있는데…. 하하하.” 김천 직지사에서 템플스테이 실무일을 맡고 있는 정흠천 거사. 서울대 법대 출신인 그는 직지사에 들어오기 전, 출판사에서 고시와 공무원 수험서를 집필했었다. 서울생활에 지쳐 낙향을 고민하던 차, 출가한 처제가 템플스테이 실무자를 찾는 사찰이 있다며 귀띔해주는 바람에 직지사와 인연이 됐다.

절에서 먹고 자는 삶이 불편하거나 낯설지 않은 것은 젊었을 때 사찰서 3년여간 부목처사 생활을 했던 경험 때문이다. 템플스테이가 없었던 그 시절 여름마다 겨울마다 사찰수련회도 숱하게 다녔던 그다. “템플스테이 실무를 맡으면서 특별히 기도수행을 하진 못합니다. 다만 조석예불을 빠짐없이 올리고 있습니다. 날마다 하는 108배는 이제 일상이 돼버렸고…. 지금 제겐 템플스테이를 열심히 돕는 것이 어떤 기도수행보다 더 큰 정진입니다.”

정흠천 거사는 지난 3월부터 직지사에 몸담은지 9개월이 넘도록 휴가 한번 내지 않고 템플스테이에 올인했다. 절에서 못가게 한 것이 아니다. 1년 정도는 사찰에 머물며 조용히 살고 싶어 가족에게도 양해를 구해놓았다. 책임감이 강한 성품인데다 몸 아끼지 않고 일에 전념하는 성향이어서 하루평균 수면시간도 서너시간이 전부다. 몸이 성할리 없다. 이가 흔들리고 아파오더니 한쪽 팔 근육이 파열됐다. 장기치료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하고 이 두 개를 뽑아버렸다는 그는 아픈 팔을 이끌고 오늘도 템플스테이에 몸을 던진다. “심신이 지치고 아파서 템플스테이에 오는 분들에게 딱히 뭔가 전해줄 특효약이 제겐 없어요. 다만 참가자 분들이 편하게 쉬고 불교문화를 체험하고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조용히 옆에서 여건과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알찬 템플스테이로 각광받고 있는 영동 반야사에는 꽃처럼 환하게 사람들을 반겨주는 이심우정 팀장이 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그녀는 국제차문화 관련 석·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박사논문을 준비중인 이른바 ‘茶(차)박사’다. 차와 명상, 요가명상 프로그램을 실무지도한다. 10대 어린시절부터 사찰을 제집처럼 다녔던 이 팀장은 수련회 ‘단골손님’이었다. 해인사 원당암 선방에서 참선공부도 했고 한달에 두 번씩 용맹정진도 해온 모범불자다. 사중 직원들과의 소통, 스님들과의 관계 등 인간관계를 템플스테이 실무에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털어놓으면서도, 템플스테이에 온 사람들과 인연에서 삶의 보람을 느끼는 그녀다.

남편의 외도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던 여성이 3박4일 템플스테이를 회향하는 날 ‘내 안에 답이 있더라’는 말을 남겼을 때. 마음에 상처를 갖고 템플스테이를 찾아온 스무살 여대생이 엄마랑 둘이 6개월간 ‘장기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마음치유를 한 뒤 사회에 나가 취직을 했다며 선물을 사들고 다시 사찰에 찾아온 일(그는 지금 반야사 자원봉사자로 활약중).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20년차 ‘삼성맨’이 휴식차 템플스테이에 왔다 뒤늦게 발심출가해서 현재 학인 스님으로 정진하고 있다는 소식. 갓 초등생이 된 여자애가 태어나 처음 엄마아빠랑 떨어져 템플스테이에 왔다가 저녁부터 울음을 그치지 않자 밤새도록 야식을 먹이며 인형놀이를 해줬던 추억…. 이심우정 팀장은 “템플스테이 참가자는 제게 있어 최고의 ‘고객’이기 때문에 어떠한 것도 힘든 부분으로 작용하지 않았다”며 “반야사에 오실 때는 너무 지쳐 한 걸음조차 뗄 수 없을 만큼 힘든 참가자가 무거운 마음을 털고 행복한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갈 때 스스로도 치유가 된다”라고 말했다.

그녀에겐 템플스테이가 ‘살아있음’을 말해준다고도 했다. “템플스테이의 장이 펼쳐질 때마다 매번 설레고 심장이 뜁니다. 비로소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죠. 진정한 참나를 찾아가는 이들에게 가교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이랄까? 하하하.”

템플스테이를 곁에서 돕고 때로는 법사나 스님의 역할까지 야무지게 해내는 이들 스텝들이 전하는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의 사연은 무궁무진하다.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아픈 사연을 끌어안고 지친 삶을 짊어지고 절에 왔다가 조금은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세상 속으로 나간다. 중학교 국어교사 출신인 팔공총림 동화사 홍련화 템플스테이 팀장 역시 7년 전 병석에 있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심신이 지쳐있을 때 ‘운명처럼’ 템플스테이와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다도는 물론 템플스테이 참가자들과 구슬땀을 뚝뚝 흘리면서 삼보일배까지 해내는 ‘열정우먼’이다. 무릎에서 피가 날 정도로 절을 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찾으려 했던 어느 실직자 곁을 밤새도록 지켜주기도 하고, 어린아이와 임산부까지 빠짐없이 보듬고 팔공산 정상에 오르기도 한다.

교사연수형 템플스테이에 참가했던 일선 학교 선생님들이 고3수험생인 반 학생 35명을 인솔해서 다시 템플스테이를 찾아왔을 때는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돌아간 아이들 전원이 ‘템플스테이 추억노트’를 만들어 보내줬을 때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홍련화 팀장은 이 보물같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줄까 고심 끝에 수능 하루 전날 절에서 정성스럽게 만든 떡과 식혜를 개개인별 포장을 해서 스님을 모시고 학교로 직접 ‘배달’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눈물을 글썽이며 고마워했다. 오는 12월 초 이들은 또다시 동화사 템플스테이를 ‘예약’해 놓았다고 한다.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우리 모두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걸 배우게 됩니다. 서로 감동하고 서로 울먹이고 서로 보듬고 아껴주면서 나를 내려놓을 수 있고 비로소 나를 찾아낼 수 있는 무대가 바로 템플스테이입니다.”

템플스테이 스텝들의 일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고단하다. 새벽예불부터 업무시작이고 다음날 프로그램을 준비하느라 밤늦도록 사무실에 있는 경우도 잦다. ‘노동강도’가 엄청나다. “근무시간이 길어도 너무 깁니다. 그래도 좋아요.” “아예 장거리 마라톤 선수라고 생각하는게 편해요.”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이 가장 힘듭니다. 자원봉사님만 기다려요.” “너무 힘들어서 이직률도 높다는데….”

템플스테이의 보이지 않는 손, 이들 스텝들의 처우개선도 이제는 필요할 때다.

[불교신문3156호/2015년11월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