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진
논설위원ㆍ청주 관음사 주지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일생 동안 기이한 행적을 통해 가르침을 제시했던 티베트의 스승 파툴 린포체는 납월(臘月)의 마지막 날이면 흐느껴 울었다고 전한다. 그 이유를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아직 아무런 준비도 못했는데 또다시 한 해가 지나갔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죽음의 한 해가 더 바짝 다가섰으니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겠냐며 공부 못한 지난 시간을 한탄하고 아쉬워했다.
세월은 토끼걸음
또한 경허스님은 참선을 권하는 글을 통해 하루 해가 가고 나면 다리 뻗고 울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는 마음공부는 거북이걸음처럼 느린데, 세월은 토끼걸음처럼 빠른 것에 대한 분심(忿心)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선사들의 이런 삶은 하루에 황금 만 냥을 쓰는 귀한 인생의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우리의 개인사(個人史)는 과연 어떠했는지 점검해봐야 할 것 같다. 만족한 웃음을 보일 것인가? 아쉬운 눈물을 지을 것인가? 아무래도 우리들의 365일을 옛 스님들의 삶에 견주어보면 하루 종일 펑펑 눈물을 쏟아도 모자랄 것 같다. 그만큼 알뜰하게 시간을 보냈다기보다는 흥청망청 시간을 낭비하고 살았던 순간이 더 많았다는 뜻이다. 모두가 새해에 세웠던 계획들은 태산이었지만 실천은 쥐꼬리가 되고 말았던 한 해였을 것이다. 대부분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었거나 게을러서 포기했던 일들이다.
현대인들의 일상과 습관을 들여다보면 너무 복잡하고 분주하다. 이것은 단순하게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하다는 것은 불필요한 일을 줄이는 것을 말한다. 우리에게는 살아가는 일에 꼭 필요한 일이 아닌데도 그 일에 시간을 허비하고 고민하는 일이 참 많다. 우리 자신은 이러한 비본질적이고 불필요한 일들로 인해 분주하게 하루를 살고 있으며, 바삐 살면서도 자신이 주체가 되지 못하는 타성의 삶을 사는 것이다.
올 한 해 동안 내게는 새롭게 시작한 일들이나 인연들이 아주 많았다. 새로운 일과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삶의 위안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관계의 형성을 의미한다. 즉, 삶의 네트워크가 더 복잡하고 용량이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들어진 관계로 인해 본성은 점점 매몰되어 가고 명상과 휴식의 뜰이 날로 줄어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현재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살펴보면,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얽힌 ‘관계’들이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불필요한 인연과 일은 삶의 언저리에서 차근차근 정리할 줄 알아야 일상의 둘레가 가벼워지고 홀가분해 질 것 같다.
반성과 점검 필요
우리는 흔히 연말의 모임을 망년회(忘年會)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일 년 동안의 일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기쁨의 순간이든, 좌절의 순간이든 그 나름대로 인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 인생의 가르침을 통해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그러므로 지나간 시간에 대한 반성과 점검이 없다면 한 해를 또 낭비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12월의 마지막 밤, 지나간 세월이 아쉽고 억울해서 눈물 흘리는 송년 모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불교신문 2389호/ 12월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