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이 황금잎” 쇼부 마키코 씨가 거실에서 나뭇잎을 깨끗하게 다듬고 있다. 쇼부 씨는 감나무 매화나무잎 등을 곱게 포장해 앉아서 연간 300만∼500만 엔(약 2900만∼4800만 원)을 벌어들인다. 가미카쓰=천광암 특파원 |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일본 도쿠시마(德島) 현 가미카쓰(上勝) 정은 90%가 산림으로 뒤덮인 벽촌이다. 인구는 2035명. 2명 중 1명은 65세 이상이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한때 폐촌(廢村) 위기에까지 몰렸던 이곳엔 최근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년 동안에만 4000여 명이 다녀갔다. 산골짜기와 들판에 널린 나뭇잎을 상품화해 연간 2억5000만 엔(약 24억 원)을 버는 할머니들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서다. 10일 나뭇잎으로 떼돈을 번다는 이곳을 찾았다.》
○ ‘황금 잎’이 열리는 감나무
18년째 나뭇잎 사업을 하고 있는 쇼부 마키코(菖蒲增喜子·82) 씨의 집 마당에는 수령 100년이 넘는 감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고된 농사일에 지친 몸을 끌고 낙엽을 치울 때마다 감나무를 원망하기를 수십 년. 쇼부 씨는 이 ‘애물단지’ 감나무가 매년 25만 엔(약 240만 원)을 벌어다 주는 ‘황금 나무’로 변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평범한 감나무 잎사귀가 빳빳한 지폐로 변하는 과정은 이렇다.
쇼부 씨는 감나무 잎에 단풍이 곱게 들면 깨끗하게 다듬어 포장한 뒤 이 지역 농협에 출하한다. 나뭇잎은 도쿄(東京) 오사카(大阪) 교토(京都) 등의 농산물 시장을 거쳐 요정이나 고급 음식점의 접시에 오른다. 고급요리를 장식하는 ‘쓰마모노(妻物)’로 쓰이는 것.
감나무와 함께 집 앞 산비탈에 빼곡한 벚나무 매화나무 남천나무의 잎을 뜯어 쇼부 씨가 얻는 수입은 연간 300만∼500만 엔에 이른다.
이 마을에서 나뭇잎 사업에 참가하고 있는 농가는 모두 194곳. 연간 1억 원 이상을 버는 집도 있다.
○ 82세의 디지털 전사
마당을 지나 4, 5평 남짓한 거실에 들어서자 쇼부 씨가 제철을 맞은 남천나무 잎을 손질해 비닐 포장에 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쇼부 씨가 하루 중 가장 긴장하는 시간은 오전 10, 11시경 농협이 팩스로 전국 시장의 당일 주문일람표를 보내올 때다. 물량은 먼저 전화를 걸어 응답하는 농가에 선착순으로 배정되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재고량을 암산해 지체 없이 휴대전화 버튼을 눌러야 한다.
작업실에 설치된 컴퓨터를 켤 때도 긴장되고 설레기는 마찬가지. 쇼부 씨가 컴퓨터를 켜자 지난해 11월 이후 개인별 월별 매출과 순위가 일목요연하게 나타났다.
나뭇잎 사업을 처음으로 고안해낸 요코이시 도모지(橫石智二·50) ㈜이로도리의 대표는 “95세에 아직 나무를 타는 할머니도 있다”면서 “일이 있으니 늙지도, 아프지도 않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현장 100번’이 성공비결
가미카쓰 정의 농가가 일본의 쓰마모노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80% 정도로 추산된다. 가미카쓰 정이 불리한 입지조건에도 불구하고 쓰마모노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게 된 원인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나뭇잎을 가장 먼저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블루오션’을 발견한 것.
요코이시 대표는 “1986년 오사카의 한 초밥집에서 음식에 따라 나온 낙엽을 손수건에 소중하게 싸는 20대 여성의 모습을 보고 사업 아이디어가 번개처럼 떠올랐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이 아이디어를 연 매출 2억 엔이 넘는 번듯한 사업으로 키우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을 넘어야 했다.
그가 “나뭇잎을 팔면 돈이 된다”는 이야기를 처음 꺼냈을 때 주민들은 물론 농협 동료들도 모두 코웃음 쳤다. 농가 4가구를 어렵게 설득해 1987년 처음 상품을 내놨지만 아무도 사가는 사람이 없었다.
요코이시 대표는 “2년간 자비를 들여 가며 전국의 요정을 있는 대로 찾아다니면서 소비 현장을 파악한 뒤에야 비로소 팔리는 상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며 “일본에는 ‘현장 100번’이라는 사업격언이 있는데 정말 맞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도쿠시마=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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