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하얀계절의 상큼함

[스크랩] 조현기자 하늘이 감춘땅 순례기

정진공 2011. 2. 6. 21:05

[하늘이 감춘 땅] 스물아홉 곳 순례 마치고

 

한곳 한곳 갈 수록 더욱 깨달은 내 안의 ‘바보’

봄 찾다 지쳐 돌아오니 앞마당에 매화가 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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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감춘 땅> 시리즈를 마친 지금 모든 것은 신비였다. 첫편인 지리산 묘향대를 갈 수 있게 될  때부터 마지막 편인 무등산 석불암을 취재하기까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한 마음이 세상을 만든다. 그것이 불교적 가르침이다. 그러나 결코 하늘도 쉽게 드러낼 것 같지 않던 오지 암자와 토굴 스물아홉 곳을 순례하고 나니, 뜻과 마음 이전에 어떤 인연을 느끼게 된다. 그런 인연이 없었다면 이런 순례는 가능하지 않았으리라.

 

다짜고짜 다가온 기절초풍할 뻔한 인연

 

우리나라 최고의 오지인 묘향대에 갈 때부터 그 인연은 신묘하게 나타났다.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오지 암자와 토굴을 순례하기로 작정하고, 그 첫 취재지로 묘향대를 정했다. 그러나 묘향대는 지리산에 차가 올라가는 성삼재에서 네다섯 시간을 꼬박 걸어서 가야하는 데다, 등산로도 없어 그곳을 가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찾아가기 어렵다. 반달곰마저 길을 잃는다는 소문이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내 나름대로 기도를 해서 마음의 씨앗을 심은 그날 회사에선 인근 효창공원 백범기념관에서 전사원이 참석하는 교육이 있었는데, 쉬는 시간에 한 선배가 다가와서 "너 묘향대라고 아니?"라고 물어 기절초풍할 뻔한 것이다.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까지 매주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선배는 지리산에 갔다가 우연히 한 스님을 따라 묘향대까지 갔던 것. 다짜고짜 "묘향대 한번 가자, 내가 안내해줄께"라는 선배의 말에 나는 내 귀를 의심해야 했다. 그렇게 하늘이 감춘 땅의 순례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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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간 은자로 머물던 현기 스님에 대한 얘기가 신문과 인터넷에 나자 독자들은 환희를 느꼈지만, 그를 오래도록 따랐던 한 거사는 "어떻게 그런 은자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느냐"며 진지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너무도 간곡한 항의 때문에 내가 직접 현기 스님에게 여쭸더니 스님께서는 "어쩔 것인가, 나는 산속에서 수행하는 게 일이고, 글쟁이는 글을 쓰는 게 일인 것을…"이라고 말을 맺었다.

 

한 발 한 발 땀으로 쓴 편지…천길 낭떠러지 돌고 돌아  아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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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감춘 땅' 순례는 땀으로 쓴 편지다. 어느 곳 하나 녹녹한 곳이 없었다. 지금은 차가 다니지 않는 곳이 없다지만 '하늘이 감춘 땅'에 등장한 오지 암자와 토굴의 대부분은 차가 닿지 않은 오지에 있다. 더구나 팔공산 오도암 서당굴을 찾다가 굴러 떨어질 뻔했고, 변산 원효방과 부사의방에선 천길 낭떠러지를 돌아가느라 아찔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어떤 위험을 감수해도 좋을 만큼, 한 말의 땀을 쏟아도 좋을 만큼 희열이 컸다. 그리고 순례를 한 번 더하면 더할수록 나는 바보였음이 확연해졌고, 이 나라에 태어났음이 영광스러워졌다.

 

공자는 <논어>에서 "뗏목을 타고 '군자의 나라' 구이(九夷)에서 살고 싶다"고 했고, 옛부터 중국에선 "죽기 전 금수강산에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10세기 아랍의 지리학자 마끄디시조차 신라를 이상향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믿지 않았다. 모두가 작은 나라의 열등감을 만회하려는 국수주의자의 억지쯤으로 여겼다.

 

그로 인해 내 몸은 고단했다. 히말라야를 비롯해 세상 사람들이 지상 최고라는 하는 곳들을 찾아 무려 30여개국을 쓸고 다닌 것도 그것이 억지임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는지 모른다. 달라이라마와 틱낫한과 빤디따 사야도와 파아옥 사야도와 토마스 키팅과 안셀름 그륀과 도널드 윌시를 만난 것도.

 

독자들의 첫 반응 “정말 그곳이 우리나라에 있나”

 

Untitled-12 copy.jpg봄을 찾기 위해 세상을 다 돌아다니다 지쳐 돌아와 앞마당에 들어서니 뜰에 매화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그토록 오랜 '국외'의 순례는 진정으로 '우리' 안에, '내' 안에 간직하고 있던 보배를 만나기 위한 예비 코스였는지 모른다. 혹은 눈앞의 것을 보지 못하는 원시(遠視)를 치료하는 과정이었는지도.

 

<하늘이 감춘 땅> 시리즈가 한겨레신문과 인터넷한겨레의 <조현기자의 휴심정>, 네이버의 <조현기자의 명상의 샘>에 연재되자 스님들을 비롯한 많은 독자들의 첫 반응은 "정말 그곳이 우리나라에 있느냐"거나 "어떻게 그런 곳들을 알아냈느냐"는 것이었다.

 

21세기 개발과 욕망의 광풍 속에서 아마존 밀림의 속살마저 송두리째 파헤쳐지고 있는 이 때 우리 안엔 하늘이 감추어둔 곳들이 있었고, 그곳을 지키는 이가 있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혼자서 잘 살믄 뭐하냐'고. 세상의 많은 공동체마을들을 돌아보고, 공동체적 삶에 대한 글을 쓰고 강연하고 설파한 내게 어울릴 법한 질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천길 낭떠러지를 돌아 수도처를 찾아갈 때도, 눈 쌓인 무인지경의 추운 암자에 수행자를 홀로 두고 되돌아 내려올 때도, 그리고 다시 수많은 대중들 속에 있을 때도 나는 혼자다. 하늘이 감춘 땅에서 홀로 사는 은자들과 다름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독립을 꿈꾸고, 실제 혼자 살아가는 1인가구가 전가구의 20%가 넘어서고 있지만, 이처럼 홀로 산다고 하더라도 '홀로 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 홀로 서야 한다. 온갖 '은혜'야 말할 바가 없지만, 그래도 나는 홀로 태어났고, 홀로 죽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홀로 설 것이다. 누군가로부터도, 나의 감정으로부터도, 상황으로부터도 독립해 홀로 설 만큼 내가 건강해지지 않는다면 가정도 직장도 사회도 세상도 결코 건강해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행복해지지 않는 한 세상이 행복한 일도 없을 것이다.

 

내가 비로소 홀로 섰을 때, 나는 드디어 독백을 끝내고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곁에 있어도 외로운 섬이 아니라, 누군가를 진정으로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아무도 없는 곳에서조차 평화롭고 기뻐서 미친놈처럼 웃을 것이다. 

 

태어나고 죽는 것도 홀로,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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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금강산 맑은물은 동해로 흐르고
    설악산 맑은물도 동해 가는데
    우리네 마음들은 어디로 가는가
    언제쯤 우리는 하나가 될까

 

하여 홀로 아리랑을 부르며,  홀로 가보자. 천상천하에 가장 크고, 가장 평화롭고, 가장 기쁘고, 가장 아름다운, 하늘이 감추어둔 '홀로'를 만나는 그 순간까지.

 

감사 감사, 귀한 인연 한 분 한 분, 애독자 여러분께도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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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암자와 토굴을 안내해주고 도와준 수경 스님, 함현 스님, 법웅 스님, 성묵 스님, 금강스님, 철산 스님, 범종 스님, 혜오 스님, 정석구 선배 등의 도움이 없었다면, <하늘이 감춘 땅>에 접근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다. 

 

또 여섯 곳에 동행해 사진을 찍어준 김재송 사진 작가, 취재에 동행해 영상과 사진을 찍으며 동고동락했던 박종찬 기자, 이경주, 이규호, 은지희, 조소영, 박수진, 김도성 피디, 취재해온 글이 독자들과 잘 만나게 해준 곽노필 팀장, 문병권 선배, 장수경 기자, <하늘이 감춘 땅>은 이들과 그 기운의 합작품이다.

 

운문사에 갔을 때 나와 한방에 잤던 쬔두 스님과 무등산의 석정 스님의 꿈에 나타났던 부처님과 월출산 상견성암 위에 떴던 무지개 구름까지도.

 

바보에게 그 길을 열어준 불보살들과  이 땅의 숨은 도인들, 그리고 나의 귀한 '인연' 한 분 한 분에게 감사의 절을 올린다. 특히 끝까지 애독해주신 여러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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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현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동영상 은지희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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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법우림(法友林)
글쓴이 : 대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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