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앳된 스님은 어느 절에 있을까. 그 스님은 사람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 스님의 혼령이 억새꽃으로 변하여 지금 나에게 서걱서걱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다. 푸른 하늘에 떠가는 구름 한 점을 쳐다보면서 그 말을 해독했다.
‘너도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어 살아버려라.’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들어갔는데, 거기 나보다 한 살 위인 스님이 있었다. 법명이 도안이었다. 자취를 하던 나는 돈암동 적조암에 뿌리를 둔 도안스님에게 가서 밥을 얻어먹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했다. 그 스님의 삶을 이해하려고 경전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작가가 된 다음 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썼다. 이 소설의 주제는 천관사에서 만난 바람이 가르쳐 준 것이었다. 그 도안스님은 미국 로스안젤리스에서 ‘관음사’를 열고 중생을 제도하시다가 얼마 전에 열반하셨고 나는 낙향하여 해산토굴에 몸을 담았다.
늙어 낙향했다. 지난 이른 봄에 장흥 천관사 주지 지행스님이 찾아와서 “선생님 제 토굴에서 봄을 잡수시지 않으실랍니까?”하고 나를 꼬였다. 경관이 수려하고 장엄한 천관산 천왕봉을 배경으로, 대웅전을 복원했다면서, 봄의 산나물 밥상을 전문으로 차리는 보살이 점심 준비를 할 거라고. 그리하여 천관사에 가서 봄을 먹고, 시 한 편을 썼다.
천관사에 가서 봄을 먹었다
보랏빛 오랑캐 꽃을 먹고
분홍빛 꽃잔디 꽃을 먹고
황금색 배추꽃을 먹었다.
질경이도 두릅도 먹고 칡 순도 먹었다.
꾀꼬리 울음소리 휘파람새의 울음소리
비둘기 소리 장끼 소리도 먹었다.
삼층 석탑도 먹고, 범종도 먹고,
대웅전 안의
부처님도 관세음보살님도 먹었다.
나는 거대한 한 송이 꽃이 되어
가슴 두근거리며
해우소에 가서 가랑이를 벌리고
봄의 교향시를 휘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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