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LIFE

거짓말같은 시간; 구름위의 산책!!!

정진공 2011. 9. 6. 08:56

풍경을 담다] 거짓말 같은 시간 구름위의 산책

평창 동계올림픽의 또 다른 개최지 강릉과 정선으로 향했다. 구름이 수시로 드나드는 산길을 쫓다 하늘 가까운 땅에 올랐고, 신기루처럼 출렁이는 운무를 만났다.


거짓말 같은 시간 구름위의 산책

 

평창 동계올림픽의 또 다른 개최지 강릉과 정선으로 향했다. 구름이 수시로 드나드는 산길을 쫓다 하늘 가까운 땅에 올랐고, 신기루처럼 출렁이는 운무를 만났다.

                                                                                                                        글·사진 박은경

 

하늘 아래 첫 동네 강릉 안반덕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 고루포기산과 옥녀봉을 잇는 해발 1100m 능선에 위치한 안반덕은 구름도 쉬어간다는 산골 오지마을이다. 흔히 강원도 사투리로 ‘안반데기’라 불리는데, 이는 이곳의 지형이 떡메로 떡살을 내려칠 때 쓰는 안반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안반덕은 이르는 길부터 심상치 않다. 도암댐을 뒤로 하고 구불구불 좁은 산길을 오르는데 길 양옆으로 나무가 울창해 마치 깊은 숲으로 숨어드는 기분이다. 오죽했으면 1996년 잠수함 침투사건 당시 동해를 건너온 간첩이 이곳에서 하룻밤을 머물렀을까.

이 길이 맞는지 살짝 의심이 들 무렵 능선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배추밭이 거짓말처럼 나타난다. 그야말로 속이 뻥 뚫릴 만큼 장쾌한 풍경이다. 능선을 타고 좀 더 높은 곳에 오르자 촘촘하게 심어진 배추가 마치 풀처럼 느껴진다. 어찌 보면 겹겹이 포개진 꽃송이도 닮았다.

 
 

밭 사이로 난 가느다란 길은 잘못 들면 헤맬 만큼 미로처럼 연결돼 있고, 군데군데 작은 집 몇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집은 다 합쳐도 30여 채가 되지 않는데 이마저도 수확이 끝나면 한동안 주인 없는 신세가 된다고 한다. 워낙 고지대라 겨울은 거주하기가 불편한 탓이다.

하지만 이런 조건 덕분에 안반덕은 여전히 청정하고, 변함없이 조용하다. 어렵게 찾아온 손님에게 내어준 싱그러운 얼굴은 민낯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감동이지만, 수시로 몰려왔다 사라지는 운무에 알 수 없는 아련함마저 깃든다.


그중 최고의 비경은 아침 햇살과 함께 찾아온다. 어둠과 운무에 갇힌 길이 신비감을 넘어 두려움마저 안겨주는 새벽,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길게 느껴지는 산길을 올라 안반덕에 이르면 설령 호랑이가 나온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적막감에 심장이 반으로 쪼그라든다.

그리고 불현듯 시작되는 일출. 구름 사이로 서서히 햇살이 들면 배추밭은 붉게 물들고 겹겹이 쌓인 봉우리에는 솜이불 같은 운무가 출렁인다.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같은 풍경은 추석 전까지만 절정을 이룬다. 속이 꽉 찬 배추는 추석을 앞두고 모두 수확되기 때문이다.

 

들꽃 넘실거리는 천상의 화원 정선 만항재

해발 1330m에 위치한 만항재는 정선과 태백, 영월이 만나는 고개로 우리나라 최대의 야생화 군락지다. 관악산(632m)의 곱절에 이르는 높이라 수치만 따지자면 쉽게 오르지 못할 듯 보이지만, 정상까지 포장도로가 닦여 있는데다 일대가 완만한 고원지대라 오히려 동네 뒷산보다 편하게 닿을 수 있다.

 
 

만항재 정상 표지석에 다다르면 느슨했던 오감이 곤두서기 시작한다. 소슬한 바람과 축축한 공기에 온몸은 움츠러들고, 흙과 야생화가 발산하는 야릇한 향기에 코끝은 바빠진다. 또 두 눈은 운무 사이로 희미하게 드러나는 수목의 실루엣을 쫓느라 정신이 없다.

만항재는 ‘야생화공원’ ‘산상의 화원’ ‘하늘숲 정원’ ‘바람길 정원’ 등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어디에 발을 들여도 야생화 향기가 그윽하다. 하지만 어느 꽃에서 어떤 향이 풍기는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얼레지, 금강초롱, 일월비비추, 마타리 등 이름마저 신기한 꽃들이 제멋대로 피어 있기 때문이다. 

또 야생화가 잦아드는 숲길에는 불과 10m 앞도 희끗 거릴 정도로 안개가 흘러 다닌다. 마치 나무가 뿜어내는 입김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신비로울 수 없다.

 
 

여기에 변화무쌍한 날씨 역시 매력을 더한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파란 하늘이 열리고, 어디선가 몰려온 먹구름에 급작스레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하는데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풍경이다.

다른 건 몰라도 큰 맘 먹고 나선 산책길에 비라니. 일정을 몽땅 망쳐버린 듯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기쁘게 산책할 것을 권한다. 운무 자욱한 숲에서 울리는 빗소리가 바람과 어울리며 수백 가지의 소리를 만들어 내는데, 그냥 돌아서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