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LIFE

남자 나이 마흔에는 결심을 해야 한다...... 김종헌저

정진공 2007. 1. 2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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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17일 (금) 00:16   한겨레

허브로 빚은 ‘책빵’ 맛보실래요?


[한겨레] 한국의 글쟁이들/⑬ 춘천에서 ‘북카페’하는 김종헌씨

“멋있게 사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사는 모습, 살아온 경험을 듣고 책을 구경하다보면 음식은 덤이란 생각이 들어요.”

홍천에서의 기억을 따라 다시 찾아왔다는 전병길(33·춘천시 우두동)씨 부부는 “이런 공간이 가까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며 “이곳은 콘텐츠와 스토리가 있다”고 말했다. ‘6가지 스프레드와 소스를 곁들인 모듬빵+허브차’를 가운데 둔 정씨 부부의 식탁 모서리에 북마스터 김종헌(60)씨가 앉았다. 메뉴와 허브에 대한 설명은 매장을 홍천에서 춘천으로 옮긴 사연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식사가 끝나자 부부는 서예작품으로 안내되었고 두런두런 얘기가 꼬리를 물었다.

춘천시 석사동 석사천변 길에 자리잡은 ‘피스오브마인드 베이커리&북카페’. ‘이형숙 전통제과제빵연구소’란 간판이 함께 붙었다. 입구 옆에는 송천 정하건의 득만권서 행만리로(得萬券書 行萬里路)’ 예서체 휘호가 걸려 있다. 안으로 발길을 들여놓으면 화~악 펼쳐진 100여평. 고풍스런 공간이다. 저만치 맞은편 제빵시설이 차지한 공간을 빼고는 사방이 만권서와 음반 5천점, 서화 300여점으로 뒤덮여 있다. 손님용 식탁에도 스며들어 유리판 안에 고서와 옛 물건이 소품처럼 고여 있다.

“20여년 동안 꿈으로만 간직했던 북카페입니다.” 강원도 홍천 공작산 아래 있던 카페를 올해 9월 이곳으로 옮겨왔다. 30여대의 트럭이 동원된 이사 행렬은 자체가 볼거리였다. 지인들이 각종 옛책과 옛물건을 맡겨 ‘홍천시대’ 3년만에 짐이 두 배 분량으로 불어났기 때문이다. ‘춘천시대’를 편 이곳, 코 앞 석사천은 버들치에 왜가리가 노닐고 고개를 들면 안마산이 봉긋하다. ‘V자 계곡의 A자 공작산’, 절경인 홍천 옛터의 풍광과 겹친다.

김종헌씨가 28년동안 몸담았던 섬유회사 남영나일론에서 사표를 던진 것은 2003년, 당시 대표이사에 연봉은 1억이 넘었다. 사직 이유는 ‘일신 상의 이유’가 아니라 ‘북카페를 차리기 위해서’라고 적었다. 서울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자리를 물색하다 홍천 옛 자리를 찍은 것은 고즈넉하면서 경관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허브농장 안이라 손님이 연계될 것이라는 판단도 한몫 했다. 예상과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독일식 호밀빵과 허브차를 기본 메뉴로 운 뗀 카페는 입소문이 나면서 서울, 경기는 물론 멀리 제주서도 손님이 찾아들었다. 동업자인 베이커리 마스터 이형숙(55)씨는 허브농장의 각종 허브를 십분 이용해 빵과 과자, 피자, 그리고 다양한 음료를 개발해 메뉴를 넓혀나갔다.

북 마스터 김씨와 베이커리 마스터 이씨는 30년째의 부부. 신혼방에 붉은 글씨로 써 붙였던 ‘결혼했다 방심 말고 오는 연적 막아내자’는 구호는 아직 유효하다. 다행인 것은 상호 시선이 결혼 30년 여느 부부와 달리 여전히 존경어려 있다는 사실.

이씨의 눈이 빵에 머문 것은 80년대 초 독일 뒤셀도르프 지사장이 된 남편 김씨를 따라 그곳에 이주하면서다. 층층시하 대가족에서 4명의 핵가족이 되면서 다가온 자기계발의 기회. 근처 빵집을 소개받아 3년 동안 어깨 너머로 빵동네 물정을 두루 익혔다. 그 빵집은 통밀과 자연원료를 이용한 ‘바이오빵’를 팔았는데 주인은 4대째 대물림한 정통 독일 제빵장이었다. 남편 김씨는 4년여 유럽생활 틈틈이 박물관, 미술관, 서점을 찾고 중세 옛 성을 레스토랑으로 개조한 곳을 눈여겨봐뒀다.

결혼했다 방심 말고 오는 연적 막자

귀국 뒤 이씨는 한국제과고등기술학교에 등록해 공부를 하다 미국제빵협회(American Institute of Baking)의 6개월 연수유학을 다녀왔다. 애초 남편 김씨는 낙방할 것을 예상해 그러마 했는데 아내가 시험에 덜컥 붙어버린 것이다. 그것이 나중에 “아내에 대한 투자가 인생에서 가장 멋진 투자였다”고 할 만큼 김씨의 자랑거리가 되고 부부의 이모작 새 인생에 큰 밑천이 될 줄은 몰랐다. 이씨는 그 뒤 8년 동안 기술학교에서 제과제빵을 가르쳤고 1997년에는 아예 아들과 함께 수능 공부를 한 끝에 대학에서 전통조리를 전공했다. 배울 욕심은 쉰 나이에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에 적을 둔 현재까지 이어졌다.

“단순히 음료를 곁들인 북카페는 자생력이 없습니다.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 따라야 합니다.” 새 책과 음료로써 겨우 현상유지를 하는 다른 북카페나 책만 가득 들여놓아 반짝행사 때만 손님이 들뿐 썰렁한 책박물관과 달리 손님이 부절한 것은 큰 회사에서 쌓은 김씨의 경영노하우와 부인 이씨의 농익은 제빵 기술이 합쳐진 결과다. 처음 우연히 선택한 ‘허브농장 안’은 거의 모든 메뉴에 허브가 들어가게 된 절묘한 끈이 되었다. 원료로 쓰는 허브는 서양종은 물론 각종 토종약초들이다. 솔잎, 마늘 등 통상 허브라고 생각지 않는 것들이 이곳에선 훌륭한 허브다. 허브차를 곁들인 허브빵, 허브 밑판으로 만든 피자, 해산물 스파게티 등 기본 메뉴 외에 십전대보탕으로 반죽한 ‘십전대보빵’, 솔잎가루와 잣 호두를 섞은 ‘솔향기빵’, 소나무 숯가루와 대추 호두가 들어간 ‘솔숯검은빵’은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다. “서울 특급호텔의 식사를 춘천 값으로 제공한다”는 게 김씨의 말이다.

사방에 펼쳐진 책은 고풍으로서의 악세사리가 아니다. 한권 한권 사 모은 그것들은 자체 가치는 물론 하나같이 구입 당시의 의도와 사연이 깃들어 있다. 그 탓일까. 그곳에 머문 다섯 시간 동안 구석구석에서 뽑아온 온갖 책과 자료와 얽힌 이야기가 쉼없이 곁들여졌다.

조선 말기 중국어 역관을 지낸 이기형씨를 외할아버지로 둔 김씨는 서울 사대문 안에서 나고 자라 옛 문향에 익숙한 터.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며 서예에 흠뻑 빠져 들었다. 중학 시절 대학천 고서점가를 지나며 고서에 친근해져 첫 인연이 삼국지 목판본이었다. 그 나이에 믿기지 않게도 원효의 <대승기신론기회본> 6권2책을 구입했다. 첫 연애, 둘째 연애, 군 복무, 취업 등으로 휴면기에 들었던 책 사랑이 다시 불끈해진 것은 1987년 전주 골동품점에서 누군가에게 선물했던 자신의 서예작품을 부르는대로 값치르고 되찾아오면서부터다. 하루 두 갑씩 피던 담배도 끊고 골프도 끊고 주말이면 등산과 탐서에 몰입했다. 골동품점에서 외조부의 저서도 발견했고 김홍도의 삽화가 실린 내사본 <오륜행실도>도 인연이 닿았다. 뉴욕 고서점에서 발견한 린위탕의 <생활의 발견> 1937년 초판본은 그가 아끼는 책 가운데 하나다.

88올림픽 총감독 유품 고이 보관

한해 400~500권씩 늘어가는 책은 30평대 집을 엉망으로 만들었고 10년 전 60평으로 넓혀야 했다. 새 집으로 이사하는 날은 부인 이씨가 인도 성지순례를 떠나는 날과 겹쳤다. “아무 걱정 말고 여행이나 잘 다녀오시오.” 돌아와 보니 남편이 인심 쓴 이유를 알았다. 60평 새집이 더 좁아보였다. 방마다 책을 두고도 모자라 거실과 안방, 화장실에까지 책이 널렸다. 빤한 벽은 서예작품과 그림 도배였다. 지하 서고를 따로 두고 쌓아두었던 책을 이사하면서 책장에 꽂아버린 것. 안방 화장대도, 옷장 위에도 책, 책. “어디서 화장을 하란 말예요?” “나는 화장안한 당신이 제일 예뻐요.”

북카페 한켠 작은 공간. 이경렬 철학문고, 유경환 컬렉션, 두 개의 팻말이 달렸다. 양장본 고서 400여권으로 된 이경렬 문고는 1996년 여름 수원의 한 파지수집상에서 폐기처리 직전 건졌다. ‘바위고개’ 작곡자인 이흥렬 선생의 맏형인 이경렬은 박종홍, 안호상보다 앞서 서양철학을 공부한 0세대 철학자.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34년 동안 배재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문고에서는 초기 서양철학자의 궤적을 더듬을 수 있다. 유경환은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의 총감독을 맡았던 이로 한국 연출계의 원로. 유족들의 몇 차례 면접을 거쳐 가장 적합한 유품 관리자로 김씨가 낙점됐다. 올 3월 인수한 14상자의 유품에는 1950~90년대 무대예술의 프로그램 팸플릿, 등사판 희곡 대본 및 최근의 뮤지컬 악보와 대본, 유 감독이 설계한 무대조명과 장치 설계도 등이 포함돼 있다.

“널찍한 공간과 책에 대한 애정, 그리고 아내의 아량 때문에 가능한 얘기죠.” 김씨는 자신의 장서를 두고 “다만, 다른 사람들처럼 버리지를 않고 모아뒀기에 가능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의 성적표, 납부금 영수증, 각종 상장, 안경, 타자기도 살아남았다. 단순한 컬렉션과는 달리 그의 장서는 생산에 잇닿아 있다. 결혼 30돌을 기념해 <빵굽는 아내와 CEO남편의 전원카페>, <남자 나이 마흔에는 결심을 해야 한다>를 펴냈고 <추사 김정희를 넘어서서>(가제)는 연내 출간을 앞두고 있다. 또 동양 선승들의 선시집, 60~70년대 생활사 이야기 등 두 종의 책은 얼개가 거의 잡혔다. 매주 두 차례 부부는 강사가 되어 이웃과 지식과 지혜를 나눈다. 토요일 오전 9시30~11시30분 ‘실무 영어+일본어 동시에 배우기’, 월요일 9시~12시는 ‘전통떡과 음식 만들기’가 주제다.

낮에는 청바지에 헐렁한 면티 차림으로 허드렛일을 하는 김씨는 밤이면 북카페가 서재로 바뀌면서 저술가로 변신한다. 낮은 제2인생, 밤에는 제3인생을 일구는 ‘삼겹행복’.

춘천/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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