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한국의미)·불교이야기

다큐멘타리 영화"위대한 침묵"조용한 돌풍

정진공 2010. 2. 3. 16:23
종교 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침묵’ 조용한 돌풍 왜?
소음·달변의 시대 침묵서 평화의 여백 찾아
  • 수도사들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영화 ‘위대한 침묵’이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상영시간 2시간42분짜리 종교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지난달 말로 관객 6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12월3일 개봉한 이 영화는 서울 종로구 씨네코드 선재에서 단관으로 개봉했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연장 상영 중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최근들어 수도생활 체험프로그램도 일반인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수도사들의 침묵 속 일상과 알프스 대자연만으로 화면을 채우는 영화 ‘위대한 침묵’이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소음과 달변의 시대, 현대인들에게 침묵이 주는 아름다움과 의미를 되찾아주는 영화다.
    # 성직자에도, 일반인에도 절실한 ‘비움’의 미학

    1300m 알프스산맥 카르투지오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수도사들의 일상을 담은 영화는 무성영화에 가깝다. 수도원에 촬영 협조를 구한 지 15년 만에 허락을 받아 완성해낸 독일 출신 필립 그로닝 감독은 기도, 예배, 식사, 성경 읽기 등 수도사들의 단순한 일상과 함께 수도원을 둘러싼 알프스 자락의 대자연만으로 화면을 채웠다. 그럼에도 평일 조조 상영분까지 객석이 꽉 찬다. 마치 수도원 안에 들어온 듯 객석은 숨을 죽인 채 관람한다.

    ‘삶의 느린 리듬에 관한 영화’라는 프롤로그처럼 관객은 영화를 통해 평화와 여백을 찾는다. “날 장님으로 만들어주신 주님께 감사하네. 그게 내 영혼에 이롭기 때문이겠지”라고 말하는 노 수사의 미소에서, 자급자족하며 삶에서 불필요한 부분들을 없애려 애쓰는 수도사들의 모습에서 만족과 감사를 배운다.

    가톨릭 신자인 김은영(33)씨는 “줄거리와 3D입체영상을 따라가기도 벅찬 블록버스터 영화와 달리 짜임새 있는 줄거리도, 소리도 없는 영화 ‘위대한 침묵’은 보는 내내 삶의 군더더기와 습관들을 비워내게 하는 훈련이었다”고 말했다.

    일반인뿐 아니다. 가장 완고하게 무소유의 삶을 지켜나가는 영화 속 수도사들의 모습은 성직자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위대한 침묵’을 두 번째 보러왔다는 리브가 수녀(서울 성 베네딕도 수녀회)는 “말을 넘어서 존재와 삶 그 자체로 보여주는 성직자의 삶의 자세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며 “세속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성직자로서 어떤 조건과 환경에도 흔들림 없이 내적인 침묵과 외적인 침묵을 잘 조화시켜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영화사 측은 개봉 초반에는 종교인이 70%, 비종교인들이 30% 정도였지만 지금은 6대 4 정도로 비종교인의 비중이 늘어났다고 분석한다. ‘위대한 침묵’의 배급사인 영화사 진진 관계자는 “수도사들의 일상을 다루긴 했지만 ‘종교영화’라고만 규정하기는 어렵고 오히려 소음 속에서 사는 현대인들에게 침묵이 주는 아름다움, 침묵 속에서 발견하는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등 사물의 아름다운 소리를 상기시키는 영화여서 일반인들에게 차츰 호소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 침묵이 그리운 사회

    현대인들의 침묵과 평화의 삶에 대한 동경은 ‘수도생활 체험학교’에서도 확인된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은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중장년층 수도생활 체험학교’를 운영했다. 신자·비신자에 상관없이 중장년층으로부터 수도생활을 체험해보고 싶다는 요청이 잇따르면서다. 오는 4∼7일에는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수도생활 체험학교를 연다. 40명 정원에 신청자만 100여명이 넘었을 만큼 인기다. 이곳에서는 명상, 기도, 침묵, 노동 등 수도자의 생활을 그대로 따른다.

    수도생활 체험학교를 담당하는 이 아타나시오 신부는 “‘위대한 침묵’에서 보이듯 수도원 생활에서 침묵은 수행의 전제조건이자 목적”이라면서 “잘 듣기 위해 내 귀를 여는 것이다. 첫째는 내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 둘째는 내면에 계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 셋째는 내 이웃·형제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말 잘하는 게 곧 능력으로 통하는 요즘 시대에 새삼 ‘침묵’으로의 귀의는 새롭다. 침묵(묵언) 수행에 대한 호응은 종교의식을 넘어서 템플스테이나 명상센터의 참선 프로그램에서도 뜨겁다. ‘대요 스님과 함께하는 참선수행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이끌어온 지리산 화엄사 포교국장 대요 스님은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은 묵언을 통해 보고 듣고 말하는 데 무심해지면서 온전히 자기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며 기뻐했다”면서 “불교의 업은 뜻(생각)으로 짓는 것, 행동(몸)으로 짓는 것 외에 입(말)으로 짓는 구업(口業)이 크다고 보는데, 묵언이란 마음에 있든 없든, 자의든 타의에 의해서든 불필요한 말로 쌓게 되는 구업을 짓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평상시에도 ‘오늘 하루는 말을 하지 않는 날’을 정해놓고 묵언수행을 하면 말보다 마음과 실천으로 말할 수 있게 된다고 조언했다. 즉 ‘위대한 침묵’의 흥행이변도 결국은 외적 껍데기에 집착했던 현대인들이 얼마나 내면의 소리를 갈망하는가를 보여주는 증표라는 얘기다.

    김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