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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m. Yong-Si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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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건축의장(建築意匠)에서 창호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특히 궁궐건축의 경우는 벽면의 거의 대부분을 창호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한국의 창호는 건축의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그 종류와 크기도 다양해 고도의 기술과 기법이 필요하다. 따라서 한국전통창호의 제작을 위해서는 오랜 동안 숙련된 창호장이 필요하다. 창호장은 소목장으로 분류하는데 대목이 건축의 구조부분을 담당한다면 소목은 수장과 장식 부분을 담당한다. 원래는 창호장은 소목장의 한 분야였다. 공포(?包)를 만드는 장인이 따로 있었고, 난간과 닫집, 장엄장식 등을 만드는 소목분야가 따로 있었다. 다른 소목분야는 그 기능이 거의 단정되거나 사라지고 가구장과 창호장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창호장이 다른 장식분야의 제작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서 창호장은 한국의 건축과 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데 대목과 아울러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창호장은 대목이 할 수 없는 섬세함과 세밀함으로 건축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필수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세밀한 이음과 맞춤, 정확한 비례의 구성은 오랜 숙련을 통해 창호장만이 가능한 것이며 장비와 목재의 사용에서부터 대목과 다르다. 꽃살문은 말할 것도 없으며 가장 평범한 살대와 문얼굴도 면접기와 모접기를 비롯해 투밀이와 등밀이 등에 정밀한 기법이 필요하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종류는 표의 내용과 같다.
문과 창호의 종류
분 류 |
종 류 |
개폐방식 |
여닫이, 미닫이, 미서기, 들어걸개, 벼락닫이, 접이문, 붙박이 |
성 격 |
문 |
대문, 중문, 협문, 쪽문, 일각문, 삼문, 사주문, 일주문, 누문, 홍살문, 신문, 정려문, 효자문, 성문, 암문, 수문, 이문(里門) |
창호 |
분합, 쌍창, 독창, 영창, 흑창, 갑창, 광창, 바라지창, 장지, 연창(불발기창), 들창(걸창), 봉창, 사창, 눈꼽째기창, 사롱, 거적문 |
살대유무 |
살창 |
세살, 만살, 아자살, 완자살, 숫대살, 용자살, 꽃살, 빗살, 도듬문, 쇄창(鎖窓) |
판문 |
통판문, 널판문, 우리판문, 빈지널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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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호의 특성 창호(窓戶)는 창과 문의 복합어이다. 엄격히 말해서 창(窓)은 창(window)에 해당하며, 호(戶)는 문(door)에 해당한다. 한국건축의 창호는 창과 호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창과 호의 기능을 동시에 지닌 경우가 많다. 이것은 우리나라 건축의 창호에 나타나는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한국 건축의 창호는 그 가변성과 복합성, 그리고 다양성이라는 점에 있어서 다른 나라의 건축과 구분되는 한국 건축의 특성을 형성한다.
우리 건축의 창호가 가변성, 복합성 그리고 다양성을 지니는 이유를 찾아보면, 우선 한국건축이 목조가구식 건축을 위주로 발달해 온 점을 들 수 있다. 목조가구식 구조는 기둥을 세우고 기둥 위에 기둥 사이를 건너지르는 수평 부재를 두어 집의 골격을 꾸미는 구조를 말한다. 이러한 구조는 벽이 하중을 감당하지 않는다. 벽은 하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며, 그만큼 개구부를 형성하는데 자유성을 보장받는다. 개구부 확보의 자유성은 가구식 구조의 건축에서 공통되게 나타나는 특성이다. 그러나 목조가구식 구조를 채택하였다는 점이 한국건축의 창호가 다양하게 발달하게 한 유일한 이유라고는 할 수 없다. 가구식 구조를 위주로 한 건축은 세계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나, 우리 건축에서의 창호는 유독 다양한 형식으로 발달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뚜렷한 사계절을 지닌 기후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건축은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 뿐 아니라 그 사이의 적당한 기후 조건을 지니는 봄과 가을을 만족시키는 환경적 조절능력을 지닐 필요가 있다. 냉난방 설비를 통해 실내 환경을 조절하는 오늘날의 건축과는 달리 과거의 건축은 건축 자체로 실내의 환경을 조절할 수 있는 오늘날의 건축과는 달리 과거의 건축은 건축 자체로 실내의 환경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닐 필요가 있다. 따라서 창호는 계절에 따라 실내 환경을 조절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한국건축의 중요한 특성으로 발전하였던 것이다. 그 예로서 여러 겹으로 구성된 외기에 면한 온돌방의 창호를 들 수 있다. 온돌방의 외기에 면한 창호는 항상 두 겹 이상으로 구성된다. 다른 나라 건축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오늘날 살림집에서 외기에 면한 창호를 두 겹으로 만드는 것도 이러한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골의 초가집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기거하는 온돌방의 외기에 면한 창은 반드시 두 겹으로 구성된다. 안쪽에는 미닫이로 된 ‘영창’또는 ‘창호지창’이라 부르는 창을 두고, 바깥쪽에는 쌍여닫이로 구성된 덧창을 설치한다. 그리고 미닫이창이 들어갈 자리로 두껍닫이라는 것을 둔다. 덧창은 띠살(세살) 또는 정자살 등의 조밀한 살대를 둔 튼튼한 창으로 방범의 역할을 한다. 방 안에 사람이 머무는 동안에는 추운 겨울이나 잠을 잘 때를 제외하면 열어두는 것이 관례이다. 덧창 안쪽의 영창은 살대의 간격이 비교적 넓은 이자살, 완자살, 용자살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든다. 살대의 간격을 넓게 한 것은 창을 닫았을 때에도 많은 빛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날씨에 따라 이 영창을 열거나 닫아서 실내 환경을 조절할 수 있다. 좀 더 고급의 집에서는 덧창과 영창 사이 또는 영창 안쪽에 미닫이창 하나를 더 두어 세 겹으로 구성하는 것이 관례였다. 겨울이 되면 이 창의 안팎으로 창호지를 바른다. 비단을 발랐다는 의미에서 ‘사창(紗窓)’이라 부르는데, 오늘날의 건축에 비유하면 일종의 방충망이 되는 셈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창호는 개폐방식이 매우 다양하다. 일본의 건축에서는 일반적인 창호에서 여닫이를 보기가 힘들다. 미닫이가 일반적인 형식이다. 반면에 중국의 건축에서는 좀처럼 미닫이를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의 창호는 여닫이로 구성된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의 창호는 미닫이와 여닫이가 용도와 기능에 따라 복합적으로 사용된다. 그 뿐 아니라 ‘분합문’이라 부르는 창호는 여러 짝으로 구성되어 창호의 일부만을 여닫아 출입하는 용도가 되며, 창호를 모두 닫았을 때는 창의 기능과 함께 벽의 기능을 지니기도 한다. 매우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창호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이 창호는 문짝을 모두 포개어 완전히 열어 재낄 수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들어열개’라 부르는 것인데, 창호를 모두 열어 재끼면 기둥 사이에는 벽과 창호, 아무것도 없이 빈 공간이 되며, 이로서 창호를 경계로 한 두 공간은 완전히 하나의 공간이 된다. 대청과 방 사이에 복합문을 설치하면, 두 공간은 하나가 되기도 하고 둘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한국건축의 공간구성이 복합적이고 가변적일 수 있는 것 역시 이러한 창호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내부와 외부 공간이 쉽게 하나가 되어 자연과의 합일이 이루어진다. 우리 민족의 자연관과 그 속에서 형성된 조형심리와 사상이 결합된 결과라 할 수 있다.
한국건축이 지니는 이러한 창호의 특성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이 땅의 자연환경 속에서 형성된 역사가 반영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창호의 역사 창호의 역사는 건축행위가 시작된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사시대의 움집에서는 창과 호의 특별한 구분이 없었다. 움집을 지으면서 남향 또는 동남향이나 서남향을 위주로 출입을 할 수 있는 시설을 두었고, 필요에 따라 그것을 막는 정도의 간단한 문을 달았다. 출입문으로서 문을 열어 두면 환기와 채광이 이루어지는 창이 되었던 것이다. 창이 설치되는 것은 집을 짓는 구조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기시대가 되면 도구의 발달과 함께 집을 짓는 구조기술이 발달하게 된다. 수직의 벽체가 출현하는 것도 이 때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벽체의 출현과 함께 출입문과는 별도로 창을 달기 시작하였다. 물론 신석기시대의 움집에서도 창을 두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수직의 벽체가 출현하는 청동기시대에 들어와 창호는 더욱 발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청동기시대에는 치목기술의 발달과 함께 집을 꾸미고자 하는 개념이 발달하면서 창호도 더욱 정교하게 발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청동기시대 움집에서 사용된 창의 형태와 구조를 알 수 있는 자료는 없다. 반면에 고대국가 형성기에 접어들면 창호는 더욱 다양하고 정교한 형태로 발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의 가형토기에 보면 문과 창이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가야 지역에서 출토된 집 모양 토기에 보면 중앙에 문을 두고 좌우로 창을 설치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문은 두 짝의 여닫이로 판문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좌우의 창은 살대를 수직으로만 세워 만든 살창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창호는 창과 문이 엄격히 구분되는 것으로 이후 문과 창의 기본 형식이 된다. 삼국시대나 남북국시대 신라, 고려의 창호는 대부분 판문 형식의 문과 살창 형식의 창으로 구성된다. 한편 살창 안쪽으로는 역시 판문 형식으로 된 창이 달려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창과 문이 엄격히 구분되는 것은 후대인 조선시대의 창호와 다른 것으로 입식 생활을 바탕으로 한 창호였다고 생각된다. 4세기 이후의 건축에서는 판문과 살창 외에 살대가 다양하게 발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백제의 동탑편에서는 살대를 45˚방향으로 교차시킨 예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일종의 교살로 볼 수 있다. 또 삼국시대, 백제 또는 그 영향을 받아 조성된 일본 법륭사 소장 옥충주자에서는 정자살의 창호도 보인다. 그러나 남북국시대까지 기본적인 창호 형식은 판문(창)과 살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늦어도 고려시대 중기에 이르면 창호의 형식이 더욱 다양해짐을 확인할 수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에서는 정자살의 살대를 지닌 창을 볼 수 있으며, 수덕사 대웅전에서는 교살의 창을 볼 수 있다. 또한 개폐방식도 변화함을 볼 수 있다. 중앙에는 두 짝의 여닫이를 두었고, 그 좌우로 위아래로 열고 닫는 들창을 두었다. 여닫이와 들창 사이에는 문설주를 세웠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창호가 더욱 다양한 형식으로 발달한다. 창살의 형태는 물론 개폐방식도 매우 다양해진다. 그 변화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입식생활 방식이 온돌과 마루의 발달과 결합으로 인한 좌식생활로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앞서 살펴본 자연환경에의 적응과 우리의 자연관과 조형의식, 사상 등과 결합한 결과로서 다양한 형태와 개폐방식을 지니는 한국건축의 창호의 특성을 형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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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호의 학술적 가치 한국건축의 창호는 그 형태와 개폐방식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나라의 건축문화와 구분되는 한국 건축문화의 중요한 특성을 이룬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러한 창호의 다양성과 그 특성은 한국의 자연환경, 그리고 오랫동안 그 속에서 살면서 형성된 지혜와 자연관, 조형심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또한 이러한 전통적인 형식의 창호는 오늘날의 살림집에서도 어느 정도 계승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한국건축의 특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오늘날에도 그 전통의 일부나마 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창호가 지니는 건축사학적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창호는 생활방식의 변화와 시대의 조형의식, 건축기술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건축 역사적 측면에서의 학술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창호의 형식은 그 기능, 개폐방식, 구성방식과 형태 등 여러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된다. 그러나 한 가지 기준으로 한국건축의 모든 창호형식을 일관되게 분류하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한국건축의 창호 형식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우선 창호는 기능에 따라 문과 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역시 시대에 따른 창호 구성이 다르다고 하는 건축이 지닌 역사성으로 인하여 모든 시대의 창호를 기능에 따라 일관되게 정리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점에서 조선시대 후기 건축으로 한정하여 창호를 기능에 따라 문과 창으로 구분하면 그 기본적인 구분은 머름의 유무에 따라 결정된다. 조선시대 후기 건축은 좌식생활을 근간으로 한다. 실내에서는 앉아있는 사람의 눈높이가 기준이 되므로 입식생활을 근간으로 한 건축에 비하여 창턱의 높이가 낮다. 대략 실내 바닥에서 1.5~1.8자 정도의 높이에서 창턱이 형성된다. 이 높이는 앉아있는 사람이 팔꿈치를 약간 치켜 든 자세로 팔걸이를 하기에 적합한 높이로 인체치수를 반영하고 있다. 이 정도 되는 창턱을 머름이라 부르며, 이 머름의 유무가 문과 창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여기에서 살펴보았듯이 창호의 구성은 한국인의 인체척도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이 지녀야 할 본질의 파악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이처럼 창턱의 높이가 낮다는 점에서도 창과 호의 구분이 애매하기도 하지만 문에도 아래에 머름과 같은 높이로 둠으로서 외관을 정리하는 의미도 지니며, 문을 닫았을 때 궁창은 머름이 되고, 그 위의 살대로 꾸며 창호지를 붙인 부분은 창의 역할을 하게 된다. 문이면서 창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창호의 형태와 개폐방식 외에도 창호의 제작은 정교한 결구법을 바탕으로 한다. 반턱맞춤은 물론 각종 연귀맞춤에 이르기까지 한국 목조건축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정교한 결구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 창호이다. 창문틀에 보이는 쌍사와 외사 등의 쇠시리와 살대의 등밀이 등 각종 치목 수법 역시 매우 정교함을 자랑한다. 또한 창호에 가해지는 문고리와 돌쩌귀, 국화쇠, 등자쇠 등의 쇠장석은 금속공예 측면에서 학술적 연구 가치가 매우 높다. 이처럼 창호에 적용된 각종 수법은 오늘날에도 계승할 필요가 있는 한국건축의 특성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창호의 예술적 가치 한국건축의 창호는 다양한 개폐방식 못지않게 다양한 형식을 지니며, 그 자체가 공예품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창호에 베풀어지는 살대의 각종 무늬는 그 자체로서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으며, 현대에도 응용할 수 있는 다양한 무늬 도안이 되므로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오늘날 전승해야 할 중요한 자료가 된다.
살대의 구성은 아자살과 완자살, 용자살, 정자살, 띠살(세살) 등 다양한 형식으로 나타나며, 그 자체로서 예술적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한국의 창호가 지닌 공예품으로서의 예술적 가치는 특히 사찰 건축의 꽃살창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사찰 법당의 꽃살창은 살대 위에 꽃을 새긴 것으로부터 통판 위에 꽃무늬 등을 투각한 창호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형식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속초 신흥사 극락보전의 측면 출입문에 새겨진 꽃살창은 꽃뿐 아니라 꽃 속의 나비와 새, 물고기 등 독창적 예술성의 세계를 보여준다. 논산 쌍계사 대웅전의 꽃살창은 전면 5간이 멀리서 보면 동일한 구성으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모두 다른 모습을 새긴 것으로서 공예품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 강화 정수사 법당의 꽃살창은 판재 위에 화병과 꽃을 새긴 것으로 일종의 정물화와 같은 예술적 가치를 보여준다.
창살 뿐 아니라 창호에 베풀어지는 문고리와 국화쇠, 돌쩌귀 등의 쇠장석은 자체로서 금속공예품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다. 또한 이들 쇠장석은 창호와 어우러져 높은 예술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이처럼 창호는 살대의 구성과 쇠장석 등 그 자체로서 공예품의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현대에 있어서도 각종 창작의 모티브가 되는 소재로서 그 가치가 높으므로 계승의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창호의 향토적 특성 창호에서 나타나는 향토적 특성, 즉 지방색은 벽선을 들이는 방식과 머름을 만드는 방식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또한 문틀과 살대의 구성에서도 지방색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은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 지역과 지방으로 구분해 보면 비교적 분명하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 지역의 창호는 비교적 세련된 수법을 지니고 있는 반면, 지방의 창호는 약간은 투박한 모습을 보인다. 서울과 지방의 문화적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살대의 구성에서 보면 서울과 경기 지역의 창호는 그 치목이 매우 깔끔하고 장식적인 경향을 보이며, 살대는 완결성을 자랑하는 각종 정교한 무늬로 꾸며진다. 또한 머름은 자진머름으로 한껏 멋을 부리고 있음을 특징으로 한다. 다분히 궁궐건축의 세련된 건축특성에서 영향을 받은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지방에서의 창호는 살대의 치목도 투박한 편이고, 장식도 많이 베풀지 않는다. 또한 머름도 지역에 따라 약간씩 다른 형태로 일부 서울의 영향을 받아 자진 머름을 구성한 경우도 있으나 상류 계층의 주택이라고 하더라도 자진머름으로 구성한 예는 흔치 않으며, 통나무를 판자로 켜서 사용한 투박한 형태의 통머름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창호의 지역적 차이가 거의 사라져가고 있어서 지방색을 찾아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각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이어 나간다는 점에 있어서 창호의 지역적 특성을 찾아내고, 이를 오늘날에 계승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맡겨진 중요한 책임 중 하나가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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