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그리는 한국화가 김현정씨
“왜 한복은 결혼식 날에만 입죠? 이렇게 화려하고 이쁜 옷을….” 어릴 때부터 그는 한복을 좋아했다. 남들은 촌스럽고, 불편하고, 남의 눈길을 끄는 옷이라는 이유로 입기를 꺼려했지만 그는 중학생 때부터 남다른 한복 사랑에 빠졌다. 그에게 한복의 치마폭은 ‘우주’로 다가왔다. 삼라만상을 품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넉넉하고, 여유 있는 공간으로 인식됐다. 그래서 ‘한국화가’인 그가 그리는 치마는 대부분 검은색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오묘한 색감을 먹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그가 한복에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현대인들의 ‘내숭’이다. 나보다는 남을 의식해 살아가는, 남의 시선에 휘둘리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김현정(27)씨에게 ‘내숭’은 스스로를 인식하는 첫걸음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한복 사랑에 빠져
서울미대에서 드물게 동양화 전공
‘화려한 한복 입고 일상 활동’ 그려
2013년 첫 개인전 하루 최다관객 기록
“남의 시선만 의식하는 ‘내숭’ 표현”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운 그는 선화예중·예고를 거쳐 서울대 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저 역시 대학을 선택할 때 남의 시선을 의식했어요. 그 시선 때문에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못 한 적이 많았어요. 친구들이 대부분 서양화를 선택할 때 주저 없이 한국화 전공한 건 그런 시선을 극복하기 위해서였어요. 서양의 기법을 쫓아가기보다는 한국화를 그리는 것이 시대를 앞서가는 일이라고 믿었어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니까요.”
그런 그의 선택은 단연 돋보였다. 지난해 서울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연 개인전 ‘내숭 올림픽’은 ‘박수근 특별전’을 제치고 하루 최다 관람객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13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연 첫 개인전 때도 완판 기록을 세웠다. 20대 중반의 신진 작가가 화단에 큰 파문을 일으킨 것이다.
고운 한복을 입은 여성이 다리 한쪽을 구부리고 앉은 채 택배상자 위에 있는 짜장면을 먹고 있다. |
사실 그의 그림은 특별한 느낌이다. 고운 한복을 입은 여성이 다리 한쪽을 구부리고 앉은 채 택배상자 위에 있는 짜장면을 먹고 있다. 그는 한 손으론 짜장면 그릇을 든 채로 입안에는 튀김만두를 오물거리고 있다. 햄버거를 배달하는 오토바이를 한복을 입은 아가씨가 운전한다. 당구 큐대를 잡고 마치 고수처럼 공을 겨냥하는 이도 한복을 입은 젊은 여성이다. 무거운 역기를 들고 운동하는 이도, 볼링공을 집어든 이도, 테니스장의 심판도, 스노보드를 타는 이도, 실내 암장을 오르는 이도, 심지어 큼직한 헤드폰을 끼고 자전거를 타는 이도 모두 한복을 입고 있는 젊은 여성이다. 모델은 한 명이다. 바로 화가 자신이다.
왜 불편하게 한복을 입고 있을까? 그림의 검정 치마는 색깔이 옅어 속이 다 비치기도 한다. 관음 본능을 자극하려 한 것일까?
“한복은 ‘격식을 차려 고상하게 차려입고, 흔한 일상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는 가장 효과적인 의상입니다. 의상과 행동의 대비를 통해서 ‘내숭’을 좀 더 강하게 전달할 수 있어요. 인물을 누드로 그리고 콜라주(저고리)나 수묵담채(치마)를 통해서 속이 비치도록 표현하는 것 또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라는 내숭에 대한 통찰을 유도해요.”
그는 실제로 대부분 일상생활을 한복을 입고 한다. 작업할 때는 생활한복을 입기도 하지만, 평상복으로는 화려한 색깔의 저고리를 입는다. 그래서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불고 있는 한복입기 운동이 그에겐 반갑기만 하다. 지난해 그의 전시장엔 한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왔다. 하지만 한복을 잘 입는 것은 쉽지 않다.
“치마를 왼쪽으로 두르고 입으면 기생이고, 여염집 규수는 오른쪽으로 둘렀어요. 전시장에서 어떤 분이 저에게 ‘기생처럼 입었다’고 말씀해주시더군요. 한복에 대해 잘 알아야 잘 그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복을 항상 입으며 생활화하고 있어요.”
그는 한복이 그 어떤 외국의 옷보다 화려하다고 여긴다. “한복의 색깔도 선명하고 화려하지만, 각종 장신구도 아름다워요. 파티에서 시선을 집중시키는 데는 한복만한 의상이 없어요.”
그의 작업 방식도 독특하다. 구상한 장면의 주인공이 되어 사진을 찍고 이를 그림으로 그린다. 사진은 두 번 찍는다. 레깅스를 입은 채 몸의 선이 드러나도록 찍고, 다시 한복을 입고 똑같은 장면을 찍는다.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싶어요. 작가는 보통 사람이 어슴푸레하게 혹은 두루뭉술하게 느끼고 있는 문제의식을 예리하게 포착해 내야 해요. 그런 ‘표현적 전문성’이 없으면 작가는 존재할 이유나 가치가 없죠. 자기 세계에 침잠하고 자기 생각에 경도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사에 예민하게 관심을 가지고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작가가 되려고 노력해요.”
그는 새달 5일부터 12일까지 서울시의회 회관에서 ‘내숭 이야기’ 전시회를 한다. 또 올여름엔 ‘내숭-놀이공원’이라는 제목으로 인사동에서 전시를 예정하고 있다. “어린 시절 놀이공원에 가면 행복했어요. 요즘 어른들은 대형 마트나 셀프 주유소 같은 곳에 가면 즐거워하는 것 같아요. 그런 현대인의 내숭을 표현하려고 해요.”
그가 그린 작품 <폼생폼사: 준비완료>는 포켓볼에서 힘차게 당구공을 치려는 장면이다. “저에게 당연하게 부과되는 세상의 기대, 나의 결정과 사고를 지배하는 타인의 시선과 편견을 깨고 싶어요. 흰 공을 치는 순간 기존의 질서는 순식간에 깨지잖아요.”
-- 한겨레 신문에서 - 이길우 선임기자..
* 세바시에서 이 작가가 강의하는 것을 보고 나서 ...
기사를 보니 스크랩 하고 싶었다...
훗날 전시회를 가 볼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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