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미소 간직한 소설가 한승원, 그와 즐긴 솔밭 데이트
그를 통해 소설가 오유권을 만나다
2009년 8월 9일 나주시 남평읍 드들강(지석강) 솔밭유원지
소설가 한승원(70)선생이 나주를 찾았다.
1997년 오랜 서울살이를 청산한 뒤 고향인 전남 장흥 땅에 내려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 아래 ‘해산토굴’이라는 집을 짓고 10여년 세월을 칩거하던 그가 아닌가.
그러던 그가 지난달 ‘희망사진관’으로 세상에 소통의 손짓을 하더니 지난 9일 나주를 찾았다.
여름 문화행사가 한창 펼쳐지고 있는 나주시 남평읍 지석강(드들강) 솔밭유원지에서 나주시문인협회 초청으로 ‘작가와 독자의 만남’행사를 갖기 위해 현장을 찾은 선생의 모습은 그 어느 누구도 고희를 넘겼을 것이라는 상상을 못할 정도로 해맑은 소년의 모습이었다.
그는 얼마전 10여년 전 발표한 작품에서부터 최근작과 미발표작까지 아우른 소설집 ‘희망사진관’(문학과지성사)을 선보였다.
삼베모시 차림의 한승원 선생
한승원 선생은 나주와의 인연에 있어서 소설가 故 오유권(1928~1999)선생에 대한 추억으로 운을 떼었다.
선생이 추억하는 오유권 선생은 주로 소박하고 천진한 농민을 대상으로 농촌풍속과 인정을 그려낸 나주 영산포 출신의 소설가.
빈농의 집에서 태어난 선생은 영산포남초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동안 영산포서초등학교 급사로 일하다 부산 체신리(遞信吏)양성소 전화과를 수료했다.
그 뒤 1966년 창작에 전념하기 위해 자리를 물러나기까지 우체업무에 종사했던 이력을 가진 작가다.
반면, 한승원 선생은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으며, 조선대학교 초빙교수까지 역임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인텔리 작가인 셈이다.
그런 그가 단지 초등학교 학력이 정규학력의 전부인 오유권 선생을 그처럼 애틋하게 추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승원 선생이 오유권 선생을 추억하는 각별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했다.
오유권 선생이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을 즈음, 뭣 모르고 집을 찾아간 한승원에게 오유권 선생은 부인더러 다른 곳에서 자고 오라고 내보낸 뒤 원앙금침 위에서 한승원을 재울 정도로 각별한 정을 베풀었다.
한승원은 오유권에 대해 “평생 가난했지만 남긴 작품은 누구보다 풍성했던 작가”라고 추억했다.
나주 영산포에서 1928년도 나서 1999년 경기도 수원 땅에서 생을 마감, 양평 양수리땅에 묻히기까지 그의 71년 생애는 가난을 숙명처럼 달고 다닌 궁핍의 연속이었지만 어느 작가보다 왕성한 작품활동으로 유명했다는 것이다.
1981년에는 뇌졸증으로 반신불수 상태였지만 투병 중에도 1백 여 편의 작품을 발표한 그를 두고 후배문인들은 귀감으로 삼을 정도였다고.
한승원은 오유권 선생이 타계한 지 5년 뒤인 지난 2004년 5월 이명한 문순태 송기숙 최일남 이청준 임철우 채희윤 작가 등과 함께 오유권 선생 기념비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금성산 유원지 입구 한수제 밑에 기념비를 세웠다.
누구보다 문학비건립에 앞장섰던 한승원 선생은
"작가 오유권은 노동하듯이 작품을 썼는데 먼저 백지에 작품을 써서 공책에 옮긴 다음에 원고지에 옮겨 썼다"며
"선생에게 배운 것은 문학에 대한 그런 치열함과 엄정함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렇듯 어렵고 고달픈 농투성이의 삶을 영산강과 남도 들녘을 무대로 하여 농민들의 한과 서민들의 애환을 그리며 농촌·농민문학에 바친 오유권 선생의 한 평생은 진정 농민의 아들이었다고 말하는 한승원.
그렇다면 오늘 나주에서는 그를 어떻게 추억하고 있는가?
그의 작품 하나 변변히 읽어보지 못한 것이 나의 수준이고, 인적 드문 한수제 입구에 잡초더미 속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것이 오유권 선생의 시비가 아닌가.
과거 일제의 토지수탈에 항거해 끝까지 농토를 지켜냈던 ‘궁삼면토지투쟁’의 고장 나주에서 이때쯤 ‘오유권농민문학상’이라도 제정해서 선생을 기리고 농민문학을 계승 발전시켜야 하는 것은 아닐지...
영산포 이창동 골모실 어딘가에 있다는 선생의 생가라도 복원해 놔야 그를 추모하는 전국의 문인들에게 면목이 서는 것 아니겠는가 싶다.
한승원 선생을 소개하는 나주예총 김노금 부회장
한승원 선생의 얘기에 빠져든 전숙 시인과 시원 박태후 화백
누군지 모르는 이 분들도...
이광형 나주시장권한대행과 아동문학가 정대연 씨
아빠와 아기도...
처음 만나본 소설가 한승원은 결코 달변가는 아니었다.
세상과 담을 쌓고 ‘해산토굴’에서 초의, 원효, 추사, 다산 같은 역사 속 인물들을 장편소설로 살려내었던 한승원은 해마다 시집, 소설작법, 산문집까지 두세 권 이상의 책을 꼬박꼬박 생산해냈다.
그러면서 해산토굴 주변에서 건져낸 이야기들에다 작가의 사람과 우주관을 녹여낸 책이 바로 엊그제 펴낸‘희망사진관’이다.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은 작가가 살고 있는 장흥의 해산토굴을 무대로 하고 있다.
도시 생활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물질적 경계 너머의 실존적 진리를 이야기하며, 토굴 생활이 세상과의 단절이 아닌 소통의 장이 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희망 사진관'의 사진사 한승원이 사진 속에 담아놓은 우리 이웃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인간과 역사에 대한 거대한 사색이 아니라 일상에서 언뜻언뜻 발견하는 인간애와 자연과의 교감에 따스한 시선을 보낸다.
인간 위주로만 생각하는 편협한 인간주의에서 벗어나 나 아닌 다른 사물들을 포용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을 담아내고 있다.
“아, 누구인들 이 세상 다녀가는 나그네새 아니겠는가. 그는 모권(母權) 세상의 바다에서 송장헤엄을 치다 간 나그네새였다.”(203쪽 ‘사랑하는 나그네 당신’)
가장 최근에 집필한 ‘나무의 길’은 단편소설이라기보다 수상록처럼 읽히는 철학적인 내용으로, 토굴 앞뜰의 늙은 나무를 여인으로 상정해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다.
그 늙은 여인은 작가에게 “인간 본위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그대의 휴머니즘이라는 것이, 우주 삼라만상에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 줄 아는가?” 물은 뒤 “인간의 길이 공격적인 남근의 길이라면 식물성인 나의 길은 수용하고 키워내는 여근(자궁)의 길”이라고 스스로 답한다.
한승원은 “토굴 마당의 늙은 그녀는 고희에 이른 내가 그의 그늘에 들어서면 거침없이 ‘길’에 대해 설법하는 오만한 존재”라고 소설 속에서는 짐짓 타박하지만 소설 바깥으로 나와서는 작가의 말에서 “세상이 오직 인간을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생각은 우주에 무척 잔인하다”며 “인간은 모성의 우주 속에서 떼를 쓰는 아이들”이라고 고개를 숙인다.
한승원 선생은 "인간만을 위한 삶에서 벗어나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소설에 담으려 했다"며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느린 삶 속에서 희망과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며 말을 마쳤다.
평생을 아이의 마음으로 세상을 노래해 온 아동문학가 정무웅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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