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와닿는 이야기

어린왕자 삼인출판사... 고전을 읽는다.!!

정진공 2021. 4. 21. 08:50

"종교가 민중의 아편(칼 마르크스)이고, 마르크스주의가 지식인들의 아편(레몬 아롱)이라면, '어린 왕자'는 어른들의 아편이다. '어린 왕자'에 '길들여진' 수억의 어른들이 이 책을 읽는다."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 언어학자이기도 한 고종석 작가는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가진 '어린 왕자' 번역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어린 왕자'처럼 살지 못하는 수억의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며 이같이 밝혔다.

'어린 왕자'는 프랑스 소설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소설이다. 고 작가가 삼인출판사와 함께 펴낸 이번 '어린 왕자'는 원서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기존 번역본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고 작가는 "'어린 왕자'는 기독교 성서 다음으로 많은 번역된 텍스트라고 알고 있다. 그렇게 많은 언어로 번역됐다는 건 이 작품이 전 세계 독자들로부터 깊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뜻"이라며 "'어린 왕자'가 비루한 현실과는 거리가 먼 환상적 동화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가진 '어린 왕자' 번역 출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고종석 작가 (사진 = 삼인출판사) photo@newsis.com

그는 "내가 이 책을 거듭 읽은 것은 이 책이 내 아편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내' 한국어판 '어린 왕자'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며 "젊을 때부터 여러 차례 읽은 책이라 그런지 번역 기간보다는 책으로 만들어지는 게 더 오래 걸린 것 같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내용이야 다른 번역본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이 책의 한국어가 특별하다는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오자'는 있을 수 있어도 '오역'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오자가 하나도 없다는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오역은 하나도 없다는 걸 확신할 수 있다. 긴가민가한 것은 끝까지 파헤쳤다. 한국어 결정판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그는 "기존 번역본들과는 다르게 한국어가 프랑스어 쪽으로 바짝 붙어있다"며 "프랑스어 구조에 가깝게 대화와 지문을 배치한 첫 번째 한국어 번역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화와 지문을 한 문장 안에서 분리하지 않고 원서가 채택한 프랑스 문학의 말하기 방식 표기를 존중했다. 단 글자 색깔을 통해 대화와 지문을 구분했다.

 
[서울=뉴시스]고종석 번역 '어린 왕자' (사진 = 삼인출판사) 2021.4.20. photo@newsis.com

고 작가는 "긴 문장의 경우 어느 것이 대화이고 어느 것이 지문인지 독자들이 구별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출판사에서 색을 다르게 하는 아이디어를 냈다"며 "일일이 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고생 많았다"고 감사함을 표했다.

여러 개를 의미하는 '들' 역시 의도적으로 살렸다는 설명이다. 그는 "한국어로 '강들', '바다들' 이라는 표현이 어색할 수 있지만 이 책에서는 프랑스어가 가진 특유의 감각을 살릴 수 있도록 일부러 이런 부분들을 살렸다"고 전했다.

'어린 왕자'를 여러 차례 읽은 그가 좋아하는 문장은 무엇일까. 그는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우물이 있기 때문이야'를 꼽았다. 또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 역시 애정 어린 문장으로 손꼽았다.

"사실 어른들이 실제 어린 왕자처럼 살 수는 없지 않나. 책을 읽는 동안이라도 환상에 빠졌으면 좋겠다."

 
[서울=뉴시스]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가진 '어린 왕자' 번역 출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고종석 작가 (사진 = 삼인출판사) photo@newsis.com

2012년 절필을 선언했던 그는 2015년 언론사 연재로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다. 이후 2017년 뇌출혈로 수술을 한 뒤 2019년 단편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고 작가는 "사실 뇌가 예전같지는 않다. 지금도 제 말이 어눌하지 않나"라며 "책을 내겠다는 욕심은 없는데 글은 계속 쓰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