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편성준 작가
스스럼없이 자신을 바보스럽다고 소개하는 사람. 낡은 한옥을 고쳐 '성북동 소행성'(작지만 행복한 별)이라 이름짓고 사람들이 많이 놀러와서 같이 이야기하고 공부하며 놀기를 바라는 작가 편성준. 얼핏 한량처럼 보이지만 그와 나눈 대화 내용을 곱씹으면 그만의 철학과 삶의 진지함이 묻어남을 알게 된다.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일 수 있다. 한 편의 시트콤처럼 유쾌하고 발랄한 재미가 있는가 하면, 갑작스레 눈물을 쏟아내게 하는 진지함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 정도 얘기면 누구나 쓸 수 있는 신변잡기 아냐?'라며 책 자체에 대한 가벼움에 대해 항의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고 한다.
편성준 작가는 그렇기에 자신이 이 책을 쓴 의도가 성공한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일기장처럼 가벼운 내용이 책으로 출판될 수 있다면, 나도 한 번 글을 써봐야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덧붙여 '바보같이 살아도 큰일 나지 않고, 회사를 그만둬도 당장 굶어죽지 않는다'에 대한 담론을 이 책을 통해 풀어내고 싶었다고 그는 말한다. 실수를 많이 하고 한편 자책하기도 하지만, 그런 자신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그는 자기수용이 뛰어난 사람처럼 보인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마치 '실수해도 괜찮아!'라는 위로의 말이 음성 지원되는 듯하다. 편성준 작가는 20년 넘는 카피라이터 생활을 과감히 접고, 현재는 참여연대 추천 글쓰기 강사 및 책쓰기 강좌 등을 열며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아내인 윤혜자 선생도 출판기획자로서 새롭게 펼쳐진 편 작가의 삶에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다음은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의 저자인 편성준 작가를, 6월 29일 그의 자택이자 아지트인 '성북동 소행성'에서 만나 인터뷰한 내용이다.
새로운 삶을 결정할 때 필요한 두 가지
▲ 성북동 소행성에서 만난 편성준 작가 |
ⓒ 유영수 |
- 잘 나가는 광고 카피라이터와 글쓰며 자유롭게 사는 현재의 삶 중 어떤 게 더 마음에 드시나요?
"잘 나가지는 않았어요(웃음). 물론 지금이 훨씬 더 좋아요. 계속 아이디어를 내면서 경제활동까지 가능한 카피라이터가 제 성향에 맞기는 했지만, 직업의 특성상 효율성에 대한 부담이 컸고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극심했거든요."
- 오해를 많이 받으실 거 같습니다. 이 책을 본 제 지인도 '팔자 좋은 사람이네'라는 반응을 보이더라구요.
"제목 자체에서 주는 이미지 때문에 오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돈 많이 모아놓았나 보다', '철이 정말 없네' 등의 반응이 나올 수 있다고 예상했어요. 책 제목의 '논다는 것'은 '이 한 세상 잘 놀다 간다'는 중의적인 표현도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 '논다는 것'과 '쉰다는 것'은 다르다고 하시면서, '그동안은 남들이 원하는 것을 하고 살았지만 지금부터는 스스로 원하는 것들을 하며 살아보려고 한다'고 적으셨어요. 작가님이 정말 원하는 건 뭘까요?
"먼저 '쉰다는 것'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것이지만, 노는 것은 좀 더 적극적으로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실행하는 것이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 뭘 하는지가 그 사람을 규정하다고 저는 생각해요. 저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가장 즐겁습니다."
-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포기'와 '방향전환'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요.
"글 쓰면서 놀기를 원하는 저희 부부는 '명품백이나 자동차는 우리 삶에 없는 거야'라는 식으로 뭔가를 포기하는 것이 필요한 거죠(실제 이 부부는 자동차가 없다). 제가 한옥에 살고 있는데 한옥이 가진 특유의 멋과 재미가 있지만, 반면 아파트에서 누릴 수 있는 편리함이나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은 포기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카피라이터로서 성공하고 출세가도를 달리는 것 대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하면서 살아가는 쪽으로 선택하고 방향전환을 한 거죠."
- 직장인들 중에 퇴직이나 전직을 꿈꾸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용기를 못 내는 사람들이 꽤 많아요.
"어렸을 때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생각해 보고 글로도 써보는 것이 좋아요. 앞으로 여유가 생겼을 때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미리 생각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죠. 지금 노는 게 중요하지 나중에 준비가 되면 놀겠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사실 작가들도 '나는 이런 책을 써야지' 완벽하게 준비하고 글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전직하고 나서 기존 수입의 1/3 정도만 벌더라도 전직 이후의 삶이 만족스러울 것 같으면, 과감하게 도전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실수담이 많은 사람이 부자다
▲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편성준(지은이). |
ⓒ 몽스북 |
- 아무 예고 없이 불쑥 전화해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아내분께서 "그래. 잘 생각했어. 결심하느라 애썼겠네"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프롤로그에 있습니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평소에 제가 얼마나 그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던 거죠. 또 제 성격을 잘 알다보니 제가 내뱉은 말을 주워담지 않을 것도 예상한 거예요. 그래서 아내는 오히려 저에게 퇴사 후 한 달 동안 제주도에서 지낼 수 있게 도와줬고, 거기에서 글을 써가지고 오라고 권유했어요."
- 아내분과 노는 방법이 비슷하다고 책에 쓰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비슷한가요?
"둘 다 별로 심심해하지 않아요. '나는 이걸 하면서 노니까 당신도 같이 하자'고 강요하지도 않고, 각자의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도록 서로 배려해 줍니다."
- 아내분이 '편성준의 음주일기'를 읽으면서 '이 사람이 좀 이상하긴 해도 마음은 참 따뜻하구나' 생각했다고 들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편성준은 어떤 사람일까요?
"바보같이 살지만 결정적으로 힘들게 살지는 않고, 하고 싶은 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저는 너무 평범한 삶은 별로 원하지 않아요."
- 막내아들에게 가장 큰 애착을 가지고 계셨던 어머님이 결혼식 날짜가 잡힌 상태에서 돌아가셨는데, 어머니를 떠올리면 어떤 마음이 드세요?
"어머니는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나서 힘든 일을 많이 겪으셨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가진 유머러스한 부분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점이라서 고맙기도 하고요. 어머니가 고매한 인격을 가지거나 탁월하신 분은 아니었지만, 참 괜찮은 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어머니랑은 인간적으로 친하게 지냈어요."
- '실수담이 많은 사람이 부자다'라고 재밌는 말씀을 하셨어요.
"멀쩡한 정신에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비가 오는 날인데도 우산을 분실하는 등 저는 정말 실수가 많아요. 물론 그것 때문에 불편한 점도 많이 있긴 해요. 소설가 이상이 '비밀이 없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저는 '실수담이 없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라고 바꿔 말하고 싶어요. 유난히 재미가 없는 사람은 실수담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요?"
- 게으름과 건망증, 주의력 부족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모든 것을 잘해야만 한다'는 비합리적인 신념으로 완벽주의를 지향하며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제가 좋아하는 분 중에 정혜신, 이명수 부부가 생각납니다. 정혜신 박사가 '인간은 완벽하게 불완전한 존재다'라고 말했어요. '완벽한 인간은 없다'라는 의미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건데요. 이 말을 인용하면서 답변을 갈음하고 싶네요."
덧붙이는 글 | 기자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연구소 홈페이지(https://happier.tistory.com/)에도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기자 프로필
유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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