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상황에, 최대한 열심히 |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아주 우연히, 서핑 결승전을 보게 됐습니다. 도쿄 올림픽은 우려도 많았던데다, 개인적으로 큰 관심이 없어서 한 게임도 보지 않았었는데요. 유일하게 본 경기였던 서핑이 의외로 재밌었습니다. 서핑은 올해 처음으로 올림픽 정식종목에 지정된 종목입니다. 이번 올림픽부터 개최국이 다섯 개 종목을 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겼는데, 서핑과 함께 스케이트보드, 스포츠클라이밍, 야구-소프트볼, 가라테도 함께 지정됐지요.
서핑 결승전에 일본선수와 브라질 선수가 올라왔습니다. 해설자가 둘의 차이를 간단히 설명했습니다.
“일본 선수는 좋은 파도를 골라 최고의 기술을 보여주려는 경향이 강하고요, 브라질 선수는 좋은 파도 나쁜 파도 안 가리고 최선을 다해 기술을 구사합니다.”
서핑경기는 30분 동안 치러지는데 25번의 파도를 탈 수 있습니다. 이 중 가장 높은 2개 점수를 합산해서 평가합니다. 기본적으로 스피드, 힘, 기술을 보지만 파도를 타는 투지와 파도의 난이도 등도 고려합니다.
경기 당일, 파도 질은 좋지 않았습니다. 서핑 경기엔 2~3m 높이로 일정하게 치는 파도가 가장 이상적인데요. 태풍 영향으로 파도가 고르지 않았고 부유물이 많이 올라와 흙탕물에 가까웠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브라질 선수는 파도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최선을 기량을 보였습니다. 경기 1분 만에 높은 파도로 보드가 두 쪽 났지만, 바로 다른 보드로 갈아타고 경기를 계속했죠. 그는 거의 모든 파도에서 고득점을 받았습니다. 일본 선수는 좋은 파도를 기다렸는지 주춤거리는 모습을 내내 보여줬습니다. 결국 기량을 맘껏 보여주지 못한 채로 경기를 마쳤다. 그렇게 올림픽 최초 서핑 메달은 브라질 선수 ‘이탈로 페레이라’에게 돌아갔습니다.
“보드가 부러졌지만 자신이 있었습니다. ‘어서 딴 걸로 바꾸자’는 생각뿐이었어요. 급하게 바꾼 보드가 부러진 보드보다 스피드가 나지 않아, 방법을 바꿔서 파도를 탔습니다. 파도는 언제나 변화무쌍하니까요.”
브라질 선수 페레이라는 그 이력으로도 주목받았는데요. 그는 빈민가 출신으로,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여덟 살 무렵 아버지가 파는 생선 상자 뚜껑을 들고 처음 바다로 나갔는데요. 스티로폼 뚜껑으로 생애 첫 서핑을 시작했습니다. 그 뒤 날마다 스티로폼을 타고 바다에 나가 파도를 즐겼고, 그의 유별난 서핑 사랑을 본 동네 사람들이 그에게 보드를 사줬다고 합니다. 이번 올림픽 출전비화도 화제였습니다. 일본 출국을 앞두고 여권과 비자를 모두 도둑맞았다고 합니다. 겹친데 덮친 격으로 태풍으로 비행기까지 연착되는 바람에 경기에 늦은 겁니다. 페레이라는 일본에 도착하지마자 수화물을 찾을 새도 없이 바로 해변 경기장으로 뛰어가야 했습니다. 경기 종료 겨우 9분을 남긴 때였죠 그는 티셔츠와 청반바지 차림 그대로 다른 동료의 보드를 빌려 타고 경기 예선전을 치뤘습니다. 그리고 기적처럼 우승했습니다. 페레이라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인생에서 어떤 문제가 생겨도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결국 다 잘될 거라고 믿으세요. 정말 그렇게 되니까요!”
코로나 상황이 갈수록 좋지가 않습니다. 나라마다 확진자가 폭증하고 뉴스마다 난리입니다. 대체 어디가 끝인지 알 수가 없고 어쩌면 이제 시작 된 게 아닌가 생각마저 듭니다. 이런 땐 ‘봐라, 상황이 이렇지 않느냐, 내가 뭘 할 수 있겠느냐.’ 상황탓을 하며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집니다. 그런데 서핑 결승전 당시 해설자로 나섰던 ‘송민’ 국가대표팀 감독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서핑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똑같은 파도는 절대 오지 않는다’입니다. 사실 좋은 파도를 고르는 것 자체도 선수들의 역량이라고 보면 돼요. 지금 경기가 펼쳐지는 해변은 파도가 좋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선수들이 이런 상태를 불평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해야죠. 아마 인생과 닮은 점이 아닐까 합니다.”
서핑과 인생을 비교한 이 해설에 감동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요, 그는 “어떤 파도가 올지 몰라도 설렘을 가지고 긍정적 마음으로 기다리면 기어코 마주해낸다”고 말합니다.
서핑 경기를 보다 문득 얼마전 읽은 ‘잡초’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전략가, 잡초>(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책에 보면 잡초의 여러 특성이 나오는데 그 중 잡초의 번식력을 다루는 부분이 나옵니다. 인간이 재배하는 채소나 꽃은 조건이 나쁘면 씨앗을 남기지 않고 그대로 죽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잡초는 다릅니다. 잡초는 조건이 나쁠때도, 좋을 때도 최선을 다해 씨앗을 남깁니다. 조건이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최선을 다해 최대의 씨앗을 남기는 게 잡초의 특징이죠.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기. 이게 페레이라 선수와 잡초의 공통점이기도 하네요.
어떤 상황을 맞이할지 모르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핑과 잡초를 보며.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돌아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