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와닿는 이야기

흙으로 가는 마음

정진공 2010. 5. 26. 08:20

[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흙으로 가는 마음

 
 
2010-05-22 03:00 2010-05-22 03:00



귀가길-김철겸 그림 제공 포털아트
어느 날 광화문직장이 있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친구는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망에 대해 말했습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직장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가 마당이 있는 작은 집에서 정원을 가꾸며 살고 싶다는 게 마지막 소망이었습니다. 요컨대 흙을 밟으며 살고 싶다는 말이었습니다. 20년 넘는 직장 생활이 흡사 흙을 밟지 못하고 살아가는 콘크리트 빌딩 숲 속의 다람쥐 신세 같다고 그는 푸념했습니다.

돌아봐도 내다봐도 아파트뿐인 콘크리트 공화국. 사대문 안이건 사대문 밖이건 흙을 밟을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 경기도 일산에 사는 사람이 아침에 버스를 타거나 자가용으로 광화문으로 출근한다고 가정하면 흙을 밟을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차례도 없습니다. 보도블록, 포장도로, 빌딩, 지하도, 주차장, 공원에 이르기까지 도시인은 철저하게 흙으로부터 차단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파트는 대한민국의 요람입니다. 시골과 도시를 가릴 것 없이 이제는 아파트 풍경이 한국의 풍경을 대변합니다. 풍경만 대변하는 게 아니라 아파트에 사는 사람의 심리와 사고방식까지 지배합니다. 단지() 중심적으로 살고 단지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단지 중심적으로 반응하는 호모 아파르티쿠스(Homo Aparticus).

아파트는 삶의 터전이라기보다 숙소의 기능이 강한 공간입니다. 핵가족 시대의 일가족은 아침에 헤어지고 밤에 만나 잠을 자는 이합집산의 공간으로 아파트를 활용합니다. 아파트 구조 자체가 열림이 아니라 닫힘을 지향하는 공간입니다. 온갖 변형을 꾀하는 내부 구조는 밖이 아니라 안으로 집중하려는 가족 이기주의의 원심력을 반영합니다. 그래서 아파트적 사고는 평형 중심으로, 동네 중심으로, 학군 중심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파트는 한국적 삶의 상징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아파트를 보고 살아서 모르겠지만, 이런 풍경을 처음 보는 외국인의 눈에는 기이한 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울 압구정동의 아파트 단지를 본 어느 독일인 교수가 “여기가 서울의 슬럼가냐?”라고 물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도시계획가가 서울 반포의 5000분의 1 축척 지번 약도를 보고 “한강변의 군사기지 규모는 정말 대단하군요”라고 말했다는 글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관성과 타성을 두들기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집은 삶의 터전입니다. 가족이라는 최초의 공동체가 기거하는 곳이고 인간과 인생이 사랑의 싹을 틔웁니다. 한 국가의 문화와 전통의 뿌리가 됩니다. 예전 우리의 단독주택 전통문화에서는 가족이 함께 해야 할 일이 많았고, 나아가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주택의 공간도 많았습니다. 그곳이 바로 마당이고 마루였습니다. 마당이 사라지고 마루가 사라진 세상,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교류는 터전을 상실한 지 오래입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께서 “모름지기 사람은 흙을 밟고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말씀이 뼛골에 사무칩니다. 진정한 복원을 ‘흙으로 돌아가는 마음’으로 풀이한다면 우리 주변에는 벗겨내야 할 인공적인 것이 너무 많습니다. 흙으로 가는 마음, 광화문에서 직장 생활을 오래 한 친구의 마지막 소망이 이루어지길 빕니다.

작가 박상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