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홍보대사 불자 트로트 신동 조기흠 군
노랫가락에 효심 담는 섬마을 꼬마 가릉빈가
밀양 용궁사 연꽃문화제 축하공연에서 열창하는 꼬마 트로트 가수 조기흠 군. 기흠이는 바다가 보이는 마애불 앞에서 노래 연습할 때가 가장 즐겁다. |
“사랑은 아~무나 하나, 사랑은 아무나 하나~.”
지난 5월 9일 경남 밀양 용궁사(주지 정무)에서 열린 연꽃문화제. 수백 명의 어린이들이 왁자지껄 모여 그림 그리기와 글짓기를 가진 이 행사의 축하공연에서 단연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출연자가 있었다. 바로 트로트 신동 조기흠 군(신지초 5). 자그마한 체구에 꼭 맞는 신사정장을 갖춰 입고 태진아 씨의 노래 ‘사랑은 아무나 하나’를 열창하는 그의 모습에 앙코르를 청하는 박수는 기본이었다. 화려한 안무로 트로트 메들리까지 선사할 때 절 마당은 어느새 덩실덩실 춤판으로 탈바꿈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는 예복 깃을 날리며 공연을 마치고 내려오자마자 아이스크림을 찾고, 또래 어린이들처럼 풍선 만들기, 부채 만들기 등 각종 체험코너마다 기웃거리며 신기해했다. 여느 10대 남자 어린이와 다름없는 개구쟁이 또한 바로 기흠이였다. 한 가지 분명한 특징이 있다면 기흠이는 언제 어디에서건 음악만 들리면 리듬에 맞춰 몸을 자유롭게 움직인다. 그런 끼와 개성이 충만한 ‘음악본능’을 가진 기흠이는 부모님을 부처님처럼 존경하는, 두 말이 필요 없는 우리시대 천진불이다.
트로트 신동 기흠이가 아버지 조광배 거사와 어머니 김숙자 보살과 함께 살아가는 곳은 전남 완도 앞바다에 자리한 모황도이다. 이 섬에 사는 사람은 세 식구가 전부다. 15년 전 바다가 좋고 섬이 좋아 이곳에 정착해 어부가 된 조 거사. 사실 그가 섬을 찾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내 김 보살이 유방암 진단을 받은 것. 치료를 위해 최적의 자연을 찾았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건강을 회복해 나가던 중 뜻밖의 희소식까지 접했다. 바로 포기하고 있다 시피 했던 2세가 생긴 것이다. 그가 바로 지금의 기흠이다.
바다 보이는 마애불 앞서 노래 연습
공연 후 용궁사 주지 정무 스님과 함께 한 기념촬영. |
조 거사가 아들의 ‘음악본능’을 알아본 시기는 기흠이가 염불을 듣고 음율을 맞춘 데서 비롯됐다. 한 때 출가까지 희망했던 불심 깊은 조 거사는 이따금 집에서 염불이나 경전 독송집을 오디오 테이프로 틀어놓곤 했다. 이 소리를 당시 어린나이의 기흠이가 익숙하게 따라 흥얼거렸단다.
“기흠이가 웅얼거리며 반야심경, 천수경을 따라하는데 소리는 한자라 흥얼거리는 정도였지만 음율 만큼은 신기하게도 정확했어요. 하지만 그 때는 출가를 염원하던 애비의 마음이 전달이 됐나보다 생각하고 넘겼지 이렇게 트로트 신동이 될 줄 몰랐죠. 시간이 흘러 기흠이가 네 살이 되던 때일 겁니다. 낚시꾼들이 섬에 남기고 간 트로트 테이프를 틀어줬더니 3번 만에, 그것도 아주 구성지게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겁니다.”
아들 기흠이의 트로트 선율에 깜짝 놀란 것은 조 거사와 김 보살만이 아니다. 섬을 찾는 사람들마다 노래를 들려준 기흠이는 순식간에 그 일대에서 가장 노래를 잘 하는, 이른바 ‘트로트 신동’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앞에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노래를 불렀고 그 때마다 묘한 기쁨을 느낀 기흠이는 아버지, 어머니가 일을 나가면 홀로 집에 남아 물 만난 물고기처럼 안무까지 따라하며 연습을 거듭했다.
무엇보다 기흠이가 좋아하는 공간도 생겼다. 바로 마을 뒷산의 마애부처님이 계신 곳이다.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 마애불 앞에 들꽃을 살짝 오려 두고 다시 신나게 노래를 부를 때, 기흠이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기흠이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8년 어머니의 암투병 사실이 언론을 통해 소개되면서 부터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치료비를 마련하기가 힘들었다. 기흠이는 어머니의 치료비를 마련하겠다는 생각으로 지역에서 열린 전국 노래자랑에 출전했다.
이를 계기로 공중파에 노래 실력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SBS의 간판 연예오락 프로그램인
스타킹에 출연한 것은 지난 2008년 겨울이다. 당시 3회 연속 우승으로 받은 500만 원의 상금을 어디에 쓰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위한 집 수리비에 보태고 싶어요”라고 대답해 더욱 잔잔한 감동을 전한 기흠이. 트로트 신동을 넘어 효자 신동이라고 불린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특히 이 방송 소식을 접한 수덕사 주지 옹산 스님이 사찰의 홍보대사를 제안했다. 완도에서 수덕사까지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였지만 기흠이 가족은 한 걸음에 스님을 찾아갔다. 지금 기흠이가 목에 걸고 귀에 달고 있는 만(卍)자 목걸이와 귀걸이는 모두 옹산 스님의 배려여서 기흠이의 두터운 불연을 짐작케 했다..
어머니에게는 치료약, 아버지에게는 활력소가 되어 온 기흠이의 노래. 가족들은 기흠이의 노래가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 줄 수 있기 위해 손발을 걷어 붙였다. 어머니는 분장 겸 코디네이터, 아버지는 운전수, 매니저, 안무가로 기흠이의 음악 활동을 적극 돕고 있다. 낡은 트럭 한 대에 세 식구가 몸을 싣고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가는 여정이 힘들고 지칠 때도 있지만 기흠이의 노래 가락이 있기에 유쾌하고 행복하기만 하다.
스타킹 출연 이후 공연 문의가 부쩍 늘었지만 항상 우선순위는 사찰이라는 게 조 거사의 지론. 그것은 수덕사 주지 옹산 스님과 나눈 무언의 약속이며 그들의 지극한 불심도 담겨 있는 것이리라.
마음 치유하는 트로트 가수가 꿈
아버지 옆에서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 조기흠 군. |
기흠이에게 장래희망을 묻자 “멋진 트로트 가수가 되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그 꿈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딛고 있는 진중한 모습이 듬직했다. 밀양 용궁사에서 공연이 끝난 뒤 주지 정무 스님과의 기념촬영을 제안하자 수줍게 웃으며 두 손을 곱게 합장한 기흠이.
“절에서 노래하니까 참 좋아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도 마을 뒷산 부처님께 꽃을 올리는 거예요. 그렇게 하고 노래를 부르는 날은 노래가 정말 시원~ 시원하게 나오는 거 있죠. 제가 불교신자라는 사실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노래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꼬마 가수, 부모님에게 보내는 가장 큰 선물로 노래를 부르는 효자, 또래들에게도 인기 짱인 만능 엔터테이너 조기흠. 기흠이는 구성진 노랫가락에 효심을 담아 부르는 섬마을의 꼬마 가릉빈가가 아닐까.
[원문보기] <출처:법보신문> 밀양=주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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