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와닿는 이야기

한국 남성 40-50대 명함없으면 상당히 불안해한다....

정진공 2012. 3. 1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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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는 분단이나 이념이 아닌 40, 50대 중년 남자의 불안에 기인한다"는 남자가 있다. 또 다른 남자는 "한국 중년 남자의 뿌리 깊은 신념이 실은 착각에 의한 것일 때가 많다"고 주장한다. 그러는 두 남자, 딱 그 또래다. 감추고 싶은, 혹은 알면서도 모른 척해 온 중년 남자의 '거무튀튀한' 속내를 여지없이 파헤친 책을 비슷한 시기에 펴낸 김정운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50)와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44)가 바로 그 두 남자다.





8일 오전 서울 한남동의 김정운 교수(왼쪽)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와 허태균 교수는 "한국 중년 남자들은 재미있으면 불안해지고, 행복하면 죄의식을 느낀다. 하지만 은퇴 후 100세까지 살아야 하는 우리는 스스로가 재밌고 가슴 설레게 하는 활동을 하며 존재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김 교수는 2009년 철들지 않는 한국 남자들의 심리를 콕 집어낸 책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고, 신작 '남자의 물건'(21세기북스)도 온오프라인 서점의 종합 베스트셀러 5위권을 유지하며 인기몰이 중이다. "우리는 늘 착각 속에 살지만, 결국 '자뻑'(자기도취)하고 살아야 행복하다"는 내용을 담은 허 교수의 첫 책 '가끔은 제정신'(쌤앤파커스)도 2월 첫째 주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 1위(예스24 집계)에 오른 뒤 꾸준히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40, 50대 한국 중년 남성들은 사회적 활동을 그만둔 후에도 50년 가까이 살아야 한다는 것에 엄청난 불안을 느껴요. '계급장'을 떼면 남는 게 하나도 없기에 쥐꼬리만 한 권력이라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죠."(김)

"그들은 스스로가 여전히 대단하다고 믿습니다. 자신이 없으면 세상이 무너질 거라고 생각하죠. 저는 책에서 이런 믿음이 실은 거의 다 착각이라고 신랄하게 말했어요. 주요 독자가 30, 40대 남성인데, 재미있게 받아들이는 30대와 달리 40대 이상은 그 내용을 부정하고 싫어하죠."(허)

고려대 심리학과 81학번 및 87학번으로 친한 선후배 사이인 두 교수가 만난 8일, 여야는 총선을 앞두고 공천 명단을 발표했다. 탈락한 현직 국회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객관적으로 볼 때 당선 가능성이 낮은 인물도 한사코 출마하려는 모습에 대해 두 교수는 "남자의 불안이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권력을 비판하고 민주화와 정의를 추구했던 '386세대', 이제는 50세를 바라보는 그들에게서도 이런 모습이 짙게 드러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김 교수는 "그들은 젊은 시절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고민하고 투쟁하느라 개인의 삶과 행복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민주화가 된 지금도 조금 편하게 쉬고 놀았다 싶으면 괜한 죄의식을 느끼고 강박적으로 스스로를 괴롭힌다"고 했다. 허 교수도 "그들은 젊을 적 옳고 그름으로만 세상을 판단하며 살아왔지만, 지금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정사(正邪)가 불분명해짐은 물론이고 인생 자체가 불확실해졌다. 이처럼 실존에 대한 불안이 커지자 그들은 가장 익숙한 권력욕에 매달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안하면 사람들은 보통 적을 분명히 함으로써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 '보수 꼴통' 아니면 '좌빨'만 남는 한국의 정치 사회가 이 같은 상황을 극명히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이런 중년 남자가 '성질 고약한 늙은이'로 남게 되면 엄청난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어요. 지금부터라도 자기만의 '남자의 물건'과 '남자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죠. 명함 없이도 '나'를 표현할 수 있고, 남과 경쟁하지도 않으며, 사회에 해악을 끼치지도 않는 이야기는 그 자신뿐 아니라 우리 사회도 성숙하게 만들죠."(김)

"중년 남자가 자신의 노하우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을 우리 사회가 만들어줘야 해요. 공식적인 문화학습의 장에서 그들이 마음껏 지식과 능력을 발휘한다면, 지금처럼 시도 때도 없이 아무데서나 '가르치려 하는'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죠."(허)

두 교수 모두 "청춘은 아름답지만, 그들이 부럽지는 않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부러움은 가질 수 있을 때 생기는 것"이라며 "근육을 키우고 주름을 없애는 등의 방식으로 젊은이와 경쟁하면 오히려 우리가 불행해진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도 "잘생기고 몸도 좋은 20대 아이돌뿐 아니라 차범근, 안성기처럼 그만의 느낌과 향기를 가진 사람에게 질투가 난다"고 덧붙였다.

두 교수는 "남자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자신이 이성에게 어필한다고 생각한다. 이 착각은 절대로 깨지면 안 된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 착각이 깨지는 순간 남자는 자신감을 잃고 무기력해지며 열등감에 빠지게 되죠. 이는 한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하지만 이 착각은 수컷의 본능상 쉽사리 깨지진 않아요."(허) "젊음이 부럽진 않지만 늙어가는 건 슬퍼요. 특히 젊은 여인과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그 여인을 여자로 보고 있는데, 그 여인이 저를 '선생님'으로만 본다는 걸 깨달을 때 마음이 서늘해지죠. 하하."(김)

김 교수는 "외모상으로도 중년 남성들이 '아저씨'가 되지 않게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 인생은 파마하기 전과 후로 나뉘어요. 파마 전엔 머리가 빠지는 것을 고민했지만, 지금은 자연스러운 볼륨감에 만족하죠. 또 배 위로 올라오는 아저씨 바지나 지나치게 큰 옷도 입지 않아요. 그랬더니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건 물론, 삶이 풍요롭고 즐거워졌어요."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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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는 분단이나 이념이 아닌 40, 50대 중년 남자의 불안에 기인한다"는 남자가 있다. 또 다른 남자는 "한국 중년 남자의 뿌리 깊은 신념이 실은 착각에 의한 것일 때가 많다"고 주장한다. 그러는 두 남자, 딱 그 또래다. 감추고 싶은, 혹은 알면서도 모른 척해 온 중년 남자의 '거무튀튀한' 속내를 여지없이 파헤친 책을 비슷한 시기에 펴낸 김정운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50)와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44)가 바로 그 두 남자다.





8일 오전 서울 한남동의 김정운 교수(왼쪽)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와 허태균 교수는 "한국 중년 남자들은 재미있으면 불안해지고, 행복하면 죄의식을 느낀다. 하지만 은퇴 후 100세까지 살아야 하는 우리는 스스로가 재밌고 가슴 설레게 하는 활동을 하며 존재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김 교수는 2009년 철들지 않는 한국 남자들의 심리를 콕 집어낸 책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고, 신작 '남자의 물건'(21세기북스)도 온오프라인 서점의 종합 베스트셀러 5위권을 유지하며 인기몰이 중이다. "우리는 늘 착각 속에 살지만, 결국 '자뻑'(자기도취)하고 살아야 행복하다"는 내용을 담은 허 교수의 첫 책 '가끔은 제정신'(쌤앤파커스)도 2월 첫째 주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 1위(예스24 집계)에 오른 뒤 꾸준히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40, 50대 한국 중년 남성들은 사회적 활동을 그만둔 후에도 50년 가까이 살아야 한다는 것에 엄청난 불안을 느껴요. '계급장'을 떼면 남는 게 하나도 없기에 쥐꼬리만 한 권력이라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죠."(김)

"그들은 스스로가 여전히 대단하다고 믿습니다. 자신이 없으면 세상이 무너질 거라고 생각하죠. 저는 책에서 이런 믿음이 실은 거의 다 착각이라고 신랄하게 말했어요. 주요 독자가 30, 40대 남성인데, 재미있게 받아들이는 30대와 달리 40대 이상은 그 내용을 부정하고 싫어하죠."(허)

고려대 심리학과 81학번 및 87학번으로 친한 선후배 사이인 두 교수가 만난 8일, 여야는 총선을 앞두고 공천 명단을 발표했다. 탈락한 현직 국회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객관적으로 볼 때 당선 가능성이 낮은 인물도 한사코 출마하려는 모습에 대해 두 교수는 "남자의 불안이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권력을 비판하고 민주화와 정의를 추구했던 '386세대', 이제는 50세를 바라보는 그들에게서도 이런 모습이 짙게 드러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김 교수는 "그들은 젊은 시절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고민하고 투쟁하느라 개인의 삶과 행복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민주화가 된 지금도 조금 편하게 쉬고 놀았다 싶으면 괜한 죄의식을 느끼고 강박적으로 스스로를 괴롭힌다"고 했다. 허 교수도 "그들은 젊을 적 옳고 그름으로만 세상을 판단하며 살아왔지만, 지금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정사(正邪)가 불분명해짐은 물론이고 인생 자체가 불확실해졌다. 이처럼 실존에 대한 불안이 커지자 그들은 가장 익숙한 권력욕에 매달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안하면 사람들은 보통 적을 분명히 함으로써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 '보수 꼴통' 아니면 '좌빨'만 남는 한국의 정치 사회가 이 같은 상황을 극명히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이런 중년 남자가 '성질 고약한 늙은이'로 남게 되면 엄청난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어요. 지금부터라도 자기만의 '남자의 물건'과 '남자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죠. 명함 없이도 '나'를 표현할 수 있고, 남과 경쟁하지도 않으며, 사회에 해악을 끼치지도 않는 이야기는 그 자신뿐 아니라 우리 사회도 성숙하게 만들죠."(김)

"중년 남자가 자신의 노하우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을 우리 사회가 만들어줘야 해요. 공식적인 문화학습의 장에서 그들이 마음껏 지식과 능력을 발휘한다면, 지금처럼 시도 때도 없이 아무데서나 '가르치려 하는'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죠."(허)

두 교수 모두 "청춘은 아름답지만, 그들이 부럽지는 않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부러움은 가질 수 있을 때 생기는 것"이라며 "근육을 키우고 주름을 없애는 등의 방식으로 젊은이와 경쟁하면 오히려 우리가 불행해진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도 "잘생기고 몸도 좋은 20대 아이돌뿐 아니라 차범근, 안성기처럼 그만의 느낌과 향기를 가진 사람에게 질투가 난다"고 덧붙였다.

두 교수는 "남자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자신이 이성에게 어필한다고 생각한다. 이 착각은 절대로 깨지면 안 된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 착각이 깨지는 순간 남자는 자신감을 잃고 무기력해지며 열등감에 빠지게 되죠. 이는 한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하지만 이 착각은 수컷의 본능상 쉽사리 깨지진 않아요."(허) "젊음이 부럽진 않지만 늙어가는 건 슬퍼요. 특히 젊은 여인과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그 여인을 여자로 보고 있는데, 그 여인이 저를 '선생님'으로만 본다는 걸 깨달을 때 마음이 서늘해지죠. 하하."(김)

김 교수는 "외모상으로도 중년 남성들이 '아저씨'가 되지 않게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 인생은 파마하기 전과 후로 나뉘어요. 파마 전엔 머리가 빠지는 것을 고민했지만, 지금은 자연스러운 볼륨감에 만족하죠. 또 배 위로 올라오는 아저씨 바지나 지나치게 큰 옷도 입지 않아요. 그랬더니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건 물론, 삶이 풍요롭고 즐거워졌어요."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