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한국의미)·불교이야기

파주에 '석불 전시장 ' 오채현 작가...

정진공 2020. 7. 27. 16:40

[인터뷰] 파주에 ‘석불 전시장’ 연 오채현 작가

40년 한결같이 현장 지키며
돌에 ‘온화한 부처님’ 조성
석불조각 분야 대중화 위해
전시장 문 열고 작품 한 곳에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돌덩이를 끊임없이 깎아 부처님 모습으로 만드는 ‘석불 조각’은 수행을 거쳐 내면의 불성을 찾아가는 깨달음의 여정과 닮아있다. 그래서 40여 년간 석불 조각을 해온 오채현 조각가에겐 어딘가 모르게 수행자의 향기가 묻어났다. 경기도 파주에 새롭게 ‘석불 전시장’을 연 오채현 작가를 2020.6월16일 만났다.

경기도 파주에 석불 전시장 문을 연 오채현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부드러운 미소를 띤 석불과 그의 모습이 닮아있다.

학창 시절부터 미술이 마냥 좋았던 소년은 회화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조각’의 매력을 알게 됐다. 평면에 머무는 회화보단 작업을 할수록 깊이가 느껴지는 조각에 이끌렸다. 경북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서양미술의 본고장인 이탈리아까지 유학을 가서 조각을 배웠다.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에게 강단에서 후학들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현장’이었다. 즐거움을 느끼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이 바로 현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긴 시간 동안 현장에서 땀 흘리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가치를 더욱 짙게 한다.

나무 쇠 등 여러 가지 기본 조각 재료 중에 유독 ‘돌’이 마음에 들었다. 조각 재료에서 돌은 위험하고 어려운 영역으로 꼽힌다. 손은 물론 몸 전체가 돌에 긁히고 베인 상처투성이다. 작업 중엔 사방에 휘날리는 돌가루에 제대로 호흡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럼에도 묵묵하게 시간을 쏟은 만큼 결과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돌이 좋았다. 그는 “단단한 돌을 깎으면 깎을수록 마음이 편해졌다”며 “잔머리 쓰기 싫어하는 단순한 제 성격과 잘 맞는 것 같다”며 환히 웃는다.

그는 1991년부터 30여 차례 개인전과 60여 차례 단체전을 열며 조각가로서 입지를 탄탄하게 굳혀 나갔다. 교계에선 지난 2000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서울 조계사에서 ‘초심’을 주제로 열린 ‘33석불 특별전’을 통해 실력을 알렸다. 2005년엔 바티칸 교황청 한국대사관에서 성모마리아 상을 의뢰해 제작했는데 그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복을 입은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의 모습으로 흡사 관세음보살과 닮아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2012년엔 세계 예술의 중심지 미국 뉴욕에서 개인전을 열며 한국불교의 아름다움을 널리 전파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앞서선 오대산 월정사에 30여점의 불상과 호랑이상을 선보여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40여 년간 한눈팔지 않고 석 조각 분야에 매진한 그의 대표작은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중 ‘미소불’에 방점이 찍힌다. 작품엔 작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드러난다고 했던가. 온화한 미소불엔 지금의 위기를 이겨내길 바라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지치고 힘들잖아요. 만약 부처님이 지금 우리 곁에 오신다면 근엄한 모습보단 어려운 이들을 보듬어주시는 자애로운 모습이라고 생각했어요. 각 시대상황이 부처님 모습에 투영되듯이 제가 생각하고 바라는 모습은 부드러운 미소를 띤 부처님이죠.”

사실 청년 시절, 두 손으로 직접 부처님을 조성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땐 그리 어렵지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나고 자라고 뛰어놀던 곳이 불교를 근간으로 삼은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였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모습을 어렸을 적부터 접해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석불 조각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은 부처님을 두 손으로 만들어 내는 게 어렵고 힘든 일인지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본인의 손을 떠난 석불은 전국 곳곳 사찰 등에서 경배의 대상이 된다는 무거움도 크게 다가왔다. “수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각각의 불보살 마다 차이점은 무엇인지 표현하기가 시간이 흐를수록 복잡하고 어렵더라고요. 매일 매일 공부하면서 수행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예전 미소불은 정교하게 다듬어지진 않았지만 자유로운 분위기가 나며, 지금은 섬세하고 세련된 느낌이 물씬 묻어난다.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예전이든, 지금이든 오채현의 ‘미소불’은 변함이 없다.

또 다른 그의 주 전공은 ‘호랑이 조각’이다. 서울 대학로 KFC 앞에 만들어진 익살스러운 석조 호랑이 상이 그의 대표 작품이다. 우리 민족의 대표하는 호랑이를 익살스럽게 만들어 낸다. 위용을 살리면서 친근한 모습이 특징이다.

그는 최근 작업장이 있는 파주 보광사 인근에 ‘석불 전시장’ 문을 열었다.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던 석불 조각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의 작품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현재 마무리 정비 중인 상황으로 조만간 대중들에게 열린 공간으로서 공개될 예정이다.

“예술은 고상하고 형이상학적인 영역이 아닌 살아가는 우리 모습이 곧 예술”이라는 그의 생각이 집약된 곳이다. 그리고 이날 반가운 이야기를 건넸다. 올 가을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광주 무각사에서 개인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이다. 그간 정성껏 조성한 미소불을 비롯해 호랑이상, 석탑 등 50여 점 이상을 대중들에게 선보인다. 아시아 최대의 비엔날레인 ‘광주비엔날레’가 내년2021. 2월 열릴 예정이어서 더 많은 국내외 관람객들의 관심을 받을 전망이다.

조각가로서 마지막 꿈은 넓은 돌산에 ‘부처님 나라’를 조성하는 일이다.

“‘부처님 나라’라는 주제로 돌 산 전체를 다듬고 조각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시절인연이 맞아 원력이 있는 분을 만나야겠죠. 산 중심엔 부처님이 있고 그 주변에는 우리 시대 일상적인 모습을 조각할 계획입니다. 자동차, 비행기도 지나가고 휴대폰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는 사람도 있겠죠. 돌산 전체에 ‘부처님 나라’가 완성되면 백년이 지나고 천년이 흘러도 우리 후손들이 지금 이 시대 모습과 부처님을 기억하는 문화유산으로 남아있지 않을까요.”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