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이야기

경기도 주어사 천진암 카톨릭 성지로 변질 !!!

정진공 2021. 6. 12. 10:53

스님들 내쫓고 주어사·천진암 가톨릭 성지로 추진

주어사·천진암, 정약용 등의 가톨릭 교리공부 장소로 활용
선조 교도들로 피해 입은 사찰에 ‘보은탑’ 건립은 못할망정
‘최초 강학지’만 부각할 뿐 ‘절’이라는 사실 감추기에 급급

대한민족 100년 계획 천진암 대성당 조감도(출처: 천진암성당 홈페이지).

경기도 광주시와 여주시 경계에 있는 앵자봉의 동쪽 여주 산북면에는 한국 가톨릭에서 ‘최초 강학지’라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성지로 조성하려 애쓰고 있는 주어사 터가 있다. 서쪽 광주 퇴촌면에는 이미 골짜기를 메워 주요 시설을 세우고 그 입구에 ‘한국천주교발상지 천진암 성지’라고 새긴 집채만 한 돌을 세워놓았으며 2079년 완공을 목표로 1979년에 ‘100년 계획 천진암 대성당’ 건립공사를 추진하고 있다.

20여년 전 청소년단체 책임을 맡고 있을 때, 경기도립 청소년야영장 수탁 운영자 모집공고가 나와서 수련원 입지 조건을 알아보려고 현지답사를 다녀온 뒤 곧바로 수탁추진을 포기한 적이 있다. 가톨릭이 ‘성지’로 선포하여 “광주 분원 유적지를 망가뜨린다”는 비판과 그곳 토지 소유자들과의 마찰 등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골짜기를 메워 대규모 성지 타운을 추진하는 곳 바로 옆에 야영장이 있었다. 이것을 보고 ‘이것은 가톨릭의 요구로 경기도청이 예산을 들여 짓고 그 운영을 위탁할 계획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포기한 것인데 결국 내 예상대로 되었다.

가톨릭이 천진암을 성지로 선포하고 이른바 ‘성역화’를 추진하는 시작 단계에서부터 그 골짜기 안에 있던 작은 절의 스님을 내쫓는 등 문제가 많았다. 심지어 그들은 “천진암은 본래 절이 아니라 별자리 등을 보는 작은 초막이었다”는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1797년 홍경모가 지은 ‘남한지’에 “천진암은 오래된 절(天眞菴爲古寺)”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정약용도 “기해(1779)년 겨울에 천진암에서 강학을 할 때(己亥冬講學于天眞菴) … 절은 다 허물어져 옛 모습이 하나도 없고, 요사채는 반이나 무너져 빈 터가 되었다(寺破無舊觀,樓前僚舍半虛舊)”는 글을 남기고 있으므로 정약용 등이 가톨릭 교리 공부를 하러 찾아다니던 시절에 퇴락하긴 하였지만 ‘절’이 있어서 그곳에서 강학을 한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 천주교발상지 천진암성지 입구 표지석.

천진암 ‘성지’ 추진 과정에서 광주 분원 유적지를 파괴할 뿐 아니라 현지 주민들의 사유지를 무단 점유하고 통로를 가로막는 등 마찰이 이어졌고, 몇 년 전부터는 토지 매입 과정의 불법 의혹이 불거지면서 가톨릭 내부에서도 문제 제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미 1993년 로마 교왕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했을 때 이곳을 방문하여 “한국천주교 발상지 천진암성지의 새 성전 머릿돌에 교황 강복(降福)을 베푸노니, 천주님의 보우(保佑)하심으로 온 겨레가 영구히 화목하기를 비노라. 1993년 9월23일 요한 바오로 2세”라는 강복문(降福文)을 주었고 그것을 받아 돌에 새겨 세워놓았으니, 한국 정부를 비롯해 그 누구도 여기에 저항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 만들었다.

여주 쪽의 주어사 터 문제는 광주 쪽의 천진암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상황이다. “(정약전이) 얼마 뒤에는 다시 녹암 권철신(權哲身)의 문하(門下)로 들어가 가르침을 받았다. 언젠가 겨울에 주어사(走魚寺)에 임시로 머물면서 학문을 강습하였다.” “정약전이 공[권철신]을 스승으로 섬겨 지난 기해년 겨울 천진암·주어사에서 강학할 적에 이벽(李檗)이 눈 오는 밤에 찾아오자 촛불을 밝혀 놓고 경(經)을 담론(談論)하였다”는 정약전과 권철신의 묘지명(둘 다 ‘여유당전서’에 수록됨) 내용으로 보아, 천진암과 함께 주어사에서 권철신이 젊은 학인들과 가톨릭 교리 공부 모임을 이끌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행정구역으로는 여주와 광주로 갈리지만, 같은 앵자봉 서쪽에 있는 천진암이 동쪽에 있는 주어사의 산내 암자였을 가능성이 있다.)

주어사-천주교 강학회 장소 표지판.

이런 이유로 가톨릭 수원교구에서는 주어사를 자신들의 성지로 만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자신들의 선조 교도들에게 강학 장소를 제공하고 그 이유 때문에 폐사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주어사에 보은(報恩)의 탑과 비석을 세워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천주교순교성지절두산’에 따르면, 그들은 주어사 터에 있던 해운대사 의징(海運大師義澄)의 부도비를 1973년 11월에 가져가 절두산순교성지에 세워놓았다. 이것은 ‘문화재 무단 반출·도난’이며 불교에 대한 배은망덕(背恩忘德)이다. 그리고 주어사 터 소유자인 산림청과 장기계약을 맺어 이곳이 ‘선조 교인들을 숨겨주고 가톨릭 교리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준 절이 있었던 곳이라는 사실(史實)’을 감춘 채 ‘최초 강학지’라는 사실만을 강조하는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로널드 라이트가 지은 ‘빼앗긴 대륙 아메리카-콜럼버스 이후 정복과 저항의 아메리카 원주민 500년사’에 따르면, 스페인 정복자들이 현재의 멕시코(Mexico) 땅에 있던 아즈텍 제국의 수도를 함락한 뒤 그곳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새 도시를 세우면서 맨 먼저 한 일은 아즈텍인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던 성소인 틀라텔롤코 피라미드 곁에 성당을 세워 선주민들을 위협하고 그들의 종교와 신앙을 말살하는 일이었다. 정복자 피사로는 “내가 그 땅을 스페인 국왕에게 넘겼으니 그런 줄 알라”는 1493년 교왕 알렉산드르 6세의 교시를 원주민 수탈과 지배의 근거로 삼았다.

2019년 1월1일 가톨릭 수원교구 산북성당의 신년 주어사 순례(출처: 가톨릭신문). 이들은 매년 1월1일 주어사 아래쪽 문바위에서부터 주어사를 거쳐 천진암대성당까지 5km를 걷는다.

1993년 요한 바오로 2세와 2014년 프란체스코 교왕 방한 때 짧은 기간에 숱한 일정을 소화해내야 하는 바쁜 상황에서 굳이 천진암을 찾아 강복문을 내리고 서울 서소문 공원에 들러 ‘성지’로 선언하게 한 한국 가톨릭의 움직임은 로마 교왕청이라는 제국의 힘을 빌려 불교와 천도교에 무서운 탄압을 펼치고 한국 정부와 국민의 입을 다물게 하려는 전술에서 나온 것이다.

하긴 2021년 5월 문대통령이 짧은 미국 방문 기간 중에 현지에서 가톨릭 워싱턴교구장인 그레고리 추기경을 만나 “한국은 가톨릭 신자 비율이 전체 국민의 12~13%, … 비율로 보면 가톨릭 국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지식인층이 특히 가톨릭 신앙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라고 하였다는 소식을 통해서도 전 세계 가톨릭을 통치하는 로마 교왕청의 힘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실은 우리나라 인구통계에서 가톨릭 비중이 6~7%를 넘어간 적은 없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한스 큉의 “종교 평화 없이 세계 평화 없다”는 말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처럼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곳에서는 종교평화가 더욱 절실하다. 그러나 그 평화가 어느 한쪽이 나라 안과 밖의 권력에 기대어 다른 이웃종교들을 억압하여 입 다물고 꼼짝 못하게 만들어서 이룩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