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와닿는 이야기

법정스님의 사후 이야기... 무소유와 그분의 고행!!

정진공 2010. 12. 11. 09:24
[동아일보] “스님 죄송해요, 우리 마음엔 아직도 미움이…”

《 “스승님, 청안하신지요. 한번도 뵙지 못하고 올해 가을 보내려나 생각했는데 꿈길에서 뵙게 되니 조금은 위안이 되는 듯합니다. 이생에서는 늘 스승을 기다리며 그리워한 제자이지만 다음 생 우리 스승님을 다시 만나 뵐 때는 스승께서 저를 기다리며 그리워하시도록 차곡차곡 신앙생활 잘 이루어 나가겠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더욱 사랑하겠습니다. 오늘이 마지막 그날처럼 살아가겠습니다.” 지난달 한 신도가 법정 스님이 설립한 (사)맑고 향기롭게의 홈페이지에 올린 추모 글이다. 이 여성 신도의 법명이 길상사를 시주한 고 김영한 여사와 같은 길상화로 공교롭다. 법정 스님은 3월 11일 세상을 떠났지만 스님이 평생 몸으로 실천해온 무소유의 향기는 더욱 짙어지고 있다. 》

○ 무소유의 향기는 자연스럽게 퍼져야

9일 오전 서울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는 전날 내린 눈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법당의 처마와 초겨울 앙상한 나무들은 바람 불면 훅 날아갈 듯 얇은 눈 이불을 덮었다. 길상사 주지와 ‘맑고…’ 이사장을 맡고 있는 덕현 스님은 법정 스님이 법문 때 잠시 머물던 행지실로 안내하다 “저 매화와 모란, 스님이 좋아해 심은 건데. 내년에는…”이라며 말을 끊었다.

법정 스님의 사진과 이따금 손수 손님들에게 차를 내주던 다구(茶具)들….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준다며 길상사 내에 거처를 따로 두지 않았던 스님의 성품을 닮아 행지실은 단출했다.

은사 스님의 사진을 물끄러미 보던 덕현 스님에게 큰스님 생전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물었다.

“병세가 위중한 상태에서 그대로 가시는 게 안타까워 이런저런 말을 했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 있냐’고 했더니 ‘아무도 없다’, ‘후회되는 것도 없다’ 했습니다. 병원에서 임종할 수 없어 길상사로 왔는데 ‘길상사 왔어요’ 했더니 호흡기 상태에서 눈을 크게 뜨시더군요.”

덕현 스님은 실오라기의 미련마저 버린 법정 스님의 뜻을 이어 길상사가 수행 도량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무소유의 향기가 수행을 통해 자연스럽게 퍼져나가기를 바란다는 취지다.

○ 책 절판 앞두고 판매량 5배 이상 늘어

‘말 빚’도 싫다며 자신의 책들을 절판시키라고 했던 법정 스님. 그럼에도 요즘 한 해를 마감하고 있는 출판계에서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법정 스님이다.

10일 교보문고에서 만난 김영주 씨(45)는 “불교 신도는 아니지만 스님의 말씀이 워낙 담백하면서도 강렬해 ‘무소유’ ‘산에는 꽃이 피네’ 같은 책을 즐겨 읽고 때때로 법문도 들었다”면서 “올해까지만 책을 살 수 있다는 말에 서점을 찾았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랭크됐고 한때 스님의 책 10여 종이 베스트셀러 순위 20위 안에 들기도 했다.

이 같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출판업계는 법정 스님의 유지를 지키기 위해 올해까지만 책을 판매하기로 이례적으로 합의했다. 교보문고 등 대형 매장에서는 절판을 앞두고 스님의 저서와 스님이 추천한 책들을 모은 기획전을 진행하고 있다.

교보문고 홍보팀 진영균 씨는 “지난달과 비교할 때 법정 스님의 책 판매량이 5배 이상 늘어 하루 1000여 권이 나가고 있다”며 “절판 소식으로 스님의 책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고 말했다. 덕현 스님은 책은 절판되지만 글을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 길상사와 맑고 향기롭게의 홈페이지에서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법정 스님의 그늘은 특정 종교의 영역을 넘어 넓고 깊었다. 8월에는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과 문학평론가 권대근 씨 등 문화 예술 종교인 16명이 쓴 추모집 ‘맑고 아름다운 향기’가 출간됐고 10월에는 광주 지장왕사에 법정 스님 기념관이 들어섰다. 이곳에서는 스님의 영정과 저서, 생전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개신교계의 한 목사는 “한국 교회의 대형화와 세속화에 대한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라며 “이런 시점에 ‘말빚마저 거두라’는 한마디로 상징되는 스님의 삶은 개신교계에 큰 부끄러움을 안겨줬고 스스로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인 허영엽 신부는 “스님이 생전 이웃 종교인들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눠 가까운 목사나 신부, 수녀님이 많았다”면서 “종교는 다르지만 가톨릭 내부에서도 그분의 삶에 공감하는 분이 적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