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60여년. 소년은 오랜 의망(意望)을 이루었다. 바람 많은 섬 제주의 돌 자갈밭 3만여 평방미터 땅을 400여 종 수목이 자라는 기름진 땅으로 일궈냈다. 나무예술로 불리는 '분재'만 1만여 점이다. 정원의 크기는 해마다 확장돼, 주제별 가든이 7군데로 늘어났다. 문패가 '생각하는 정원'이다. 92년 개관해 내년이면 스무살이 되는 정원은 한국은 물론,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95년 이곳을 방문한 중국의 장쩌민 전 국가주석은 "정부 지원 한 푼 없이 황무지를 아름다운 정원으로 일군 무명 농군의 개척정신"에 경의를 표했다. 장 주석이 다녀간 뒤 이 정원을 방문한 중국 고위공무원이 5만명에 이른다고 했다.
이제는 백발노인이 된 소년, "나무를 모르고 어찌 인생을 안다 말하느냐"고 묻는 농부, 그의 이름은 성범영(72)이다.
- ▲ 1200년 수령(樹齡)으로 추정되는 향나무 아래에 성범영 원장이 앉았다. 그는“세계적으로 이름난 정원에 유일하게 관심을 갖지 않는 곳이 이 나라 정부”라면서.“ 나무에 대한 지식, 안목이 없 는 사람은 국가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 갈 길 잃은 한국 사회는 나무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일갈했다./ 이종현 객원기자 grapher@chosun.com
◆장쩌민, 후진타오가 경의를 표하다
성범영 원장을 만난 날에도 '생각하는 정원'은 중국인들로 넘쳐났다. 장팅옌 초대 주한 중국대사가 공청단 500명 단원을 이끌고 견학을 왔다. 중국어 표지판을 열심히 읽던 한 청년에게 물었다. "정원이 아름다운가요?"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 "정원을 일군 그 치열한 정신이 아름답습니다." 뙤약볕에 시달리는 나무들 돌보랴, 손님 맞으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성 원장을 아직 일반에 개방하지 않은 '비밀의 정원' 한편에서 겨우 만났다.
―장쩌민 주석 효과가 오래간다.
"고맙지. 중국인들은 정원을 구경한 뒤 나를 꼭 만나보고 싶어한다. 개척정신의 주인공이 누군지 궁금해서.(웃음) 어린 학생들도 나무에 대해 질문을 참 많이 한다. 기특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장 주석이 이 시골정원까지 오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인민일보 총편집장이었던 판징이가 우리 정원을 보고 가서 '신병매관기(新病梅館記)'라는 글을 쓴 게 계기였다. '병매관기'라고 청나라 문학가가 쓴 글이 있는데, 인성을 왜곡하고 짓밟은 청 왕조의 죄악을 매화분재로 상징해 비판한 글이었다. 그런데 우리 정원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더라. 분재란 나무를 괴롭히는 일이 아니라, 더 건강하고 아름답게 자라도록 교정하는 예술임을 깨달았다더라. 95년 11월 17일자 인민일보에 실린 그 글을 읽고 장 주석이 전격 방문하게 됐다."
―덕분에 중국에도 많이 나가신다 들었다.
"40차례쯤 될까. 이 촌놈이 북경대, 남경대에도 가봤으니까. 하하!"
―무슨 얘기를 해주시나.
"무식한 농부가 할 얘기가 뭐 있겠나. 그냥 나무 심고 가꾸며 살아온 얘기들. 그러잖아도 한국의 석학들 다 놔두고 나 같은 농군을 왜 부르느냐 물은 적 있다."
―98년엔 후진타오 당시 부주석이 왔었다.
"우리 정원의 연혁, 설명문을 꼼꼼히 읽으며 관찰하고 질문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50년 된 육송 앞에서 덕담도 하더라. 100만명 관람객 시대를 기원한다고."
―중국 말고도 외국의 명사들이 이곳을 많이 다녀갔다고 들었다.
"레이니 전 미국대사 같은 분은 분재 마니아인데 분재대국인 일본에서도 보지 못한 작품들을 여기 와서 보게 됐다며 나를 포옹하더라. 장 폴레오 전 프랑스 대사는 세 번이나 다녀갔다. 2000년엔 나카소네 전 일본 총리가 왔었고. 그러고 보니 우리 대통령들만 다녀가지 않았다.(웃음)"
―북측 인사들도 방문했다.
"2000년에 김용순 북한노동당 비서와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왔다. 모두들 나더러 애국자란다."
―조경학·분재를 전공한 학자도 아닌데, '세계 최고의 정원'이란 찬사를 듣는 비결이 뭘까.
"나는 그저 이 땅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정원을 만들어놓았을 뿐이다."
―왜 '생각하는 정원'인가?
"돈도 없이, 설계도도 없이 나 혼자 생각하며 만든 정원이라서. 사람은 생각을 새롭게 바꾸지 않으면 빨리 늙는다. 분재할 때 뿌리를 그때그때 잘라주지 않으면 나무가 죽듯이."
―원래는 문패가 '분재예술원'이었다.
"정원이 커지고 분재뿐 아니라 돌담, 연못, 오름 지형 등 볼거리가 많아져서 이름을 바꿨다."
―그래도 '생각하는 정원'의 주인공은 분재들이다.
"분재가 아름다운 건 시련을 견뎌낸 나무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흉내 내되, 자연보다 훨씬 아름답게 가꾸는 분재를 예술이라고 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분재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으셨나?
"등록금이 없어 고등학교 중퇴하고 서울 올라왔을 때 우연히 화원에서, 신세계백화점 옥상에서 분재를 봤다. 작은 화분에서 나무가 자란다는 게 그렇게 신기할 수 없더라."
―자연 그대로 둬도 아름다운 나무에 잔인한 짓을 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무식한 소리다. 분재에 감아놓은 철사를 두고 하는 얘기인가 본데, 수형을 교정하는 데 잠시 사용할 뿐이지 그것이 식물을 죽이는 건 아니다. 고통 없이 인격을 수양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분재가 잔인한 짓이라면, 왜 분재 나무의 수명이 그토록 길겠는가. 햇빛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게 뿌리를 잘라주고 잎을 솎아주는 게 분재다. 좁은 공간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며 더욱 강해지는 게 분재다."
―분재를 일본 문화로 아는 사람도 많다.
"분재는 1300여년 전 중국에서 시작돼 고려 중엽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가 다시 일본으로 갔다. 일본이 분재 종주국이 된 것은, 늦게 받아들였지만 분재정원 가꾸는 일에 국가가 나섰기 때문이다. 해마다 '국풍'이라는 대대적인 행사가 열리지 않던가. 분재를 수출해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이는 나라다. 300년 된 일본의 율림공원에 가서 넋을 잃은 적 있다. 내게 우주를 준다 해도 이렇게 아름다운 나무와 이 공원은 바꾸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자서전 '생각하는 정원'(김영사)에 보니, 분재를 어린아이 키우시는 일에 비유하셨더라.
"시련과 아픔의 시간을 견뎌야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점에서 분재와 같다. 부러진 가지는 마디를 만들고 표피에는 그 연륜이 밴다. 많은 고통과 싸워 살아남은 나무일수록 수형이 격을 갖춘다. 시련을 겪으며 끊임없이 경쟁력을 높인 사람이 성공하지 않던가."
―자율·창의성을 강조하는 21세기식 교육에서는 구식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말이다.
"그래서 저렇게 안하무인 키워내는 교육이 된 거다. 국가관도 없고, 부모와 사회 어른들에 대한 존경심도 없고. 창의성도 오랜 공부와 관찰에서 나오는 거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건가? 한심하다."
◆'미친놈' 소리 들으며 자갈밭을 일구다
성범영은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지만 "제주가 나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제주와 나무를 빼면 자기 인생에 남는 것이 없기 때문이란다. 제주와 인연을 맺은 건, 1962년 군을 제대하면서다. "라디오에 제주도를 다녀온 교수들이 한라산과 천지연폭포에 대해 이야기하데요. 꼭 가보고 싶더라고요. 순간 제주가 고향인 군대 친구가 생각나요. 수소문해 기별을 넣은 뒤 목포에서 연락선을 타고 제주로 첫 여행을 떠났지요." 한때 서울에서 수출용 와이셔츠를 제작해 돈을 제법 벌었지만, 정원에 대한 꿈, 한번 보고 반해버린 제주에의 미련을 접지 못해 고생길을 자청했다. 와이셔츠 팔아 번 돈으로 처음 구입한 땅이 한경면 저지리 일대. 전기도, 수도도 없이 빗물을 받아먹고 사는 가난한 황무지 땅에서 그는 꿈을 향한 첫 삽을 떴다. 68년의 일이다.
―생면부지의 땅, 그것도 척박한 섬에서 한집안의 가장이 새 삶을 시작한다는 게 가능했을까.
"돈을 벌어도 행복하지 않은 걸 어떡하나. 복잡한 도시의 삶이 싫었다. 제주에 내려간 첫날 섬을 한 바퀴 돌고 여관방에서 자는데 가슴이 울렁거려 잠이 안 오더라. 여기서 나무만 키우고 살 수 있다면 어떤 고생도 할 수 있겠더라. 짐 싸서 내려올 때까지 30번을 배 타고 제주로 내려갔다."
―하필 오지인 한경면에 땅을 구했다.
"중산간이지만 서부 평야의 중심지라 나무를 키우기 좋겠다 싶었다. 바다의 짠 기운이 날아오지도 않았고."
―책에 보니 고생을 참 많이 하셨더라.
"다들 미친놈이라고 했지. 가시덤불 자갈밭을 일군다고. 눈이 와도 일을 하니까 나더러 사람 몇 죽일 놈이라고 했다. 나는 그들이 이상했다. 가난이 덕지덕지 붙은 마을인데 일할 생각들을 안 하더라. 잔칫집· 초상집만 쫓아다니며 빌붙어 먹을 생각만 하더라."
―원주민들의 텃세도 심했다던데.
"관공서 공무원들이 엄청 배타적이다. 제주방언 못하면 창구에서 상대를 안 해준다. 건물 설계도 육지에서 해왔다고 집어던졌지. 그 설움에 비하면 몸 던져 일하는 노동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신용협동조합도 만드셨다.
"가난하니, 아파서 병원에 갈 돈이 없어 굿을 하다가 사나흘 만에 사람이 죽어나가더라. 미신으로 꽉 찬 마을이었다. 가난을 벗어나려면 종자돈이 있어야 해서 영락교회 도움으로 신협을 열었다. 처음엔 돈놀이한다고 욕들 했지."
―효과가 있었나.
"100년 가도 그 자갈밭에선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고 비웃던 이웃들이 담 너머로 내가 일하는 거 보고 자기들도 따라 하기 시작하더라. 수년씩 버려둔 땅에 밀감나무를 심고 채소를 심었다. 지금은 연간 2억원 소득을 올리는 농가가 예닐곱 군데, 1억원 소득이 스무 농가가 넘는다. 제주에서 내로라하는 부자마을 됐다."
―정원에 '새마을운동' 기념비가 있더라. 박정희 대통령과 인연이 있으신가.
"인연은 무슨. 다만 나는 이 정원이 새마을운동 덕분에 만들어졌다고 믿는 사람이다. 자갈밭을 일굴 무렵 새마을운동이 시작됐는데, 내가 자갈밭에서 성공하면 새마을운동도 성공한다는 신념으로 일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마음을 다잡게 해주었다."
◆"오늘 하루 살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돈이 생길 때마다 제주는 물론 전국에서 나무를 구해와 심었다더라. 돌 자갈밭이었던 땅에서 나무들이 뜻대로 자라주었을 것 같지 않다.
"92년 개원할 때까지 숱한 나무들이 죽어나갔지. 나무마다 성향이 다르니 키우는 방법도 달랐고, 특히나 분재는 철사 걸이부터 가지치기, 물과 거름 주기, 병충해 예방까지 하루 15시간을 일해도 모자랐다. 한여름에는 잠시 한눈만 팔아도 땡볕에 잎이 타들어갔고, 나무에 물 주는 시간만 5~6시간이 걸렸다.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지. 정원 일은 물론 인부들 밥 세끼에 새참 두끼까지 해 날랐고, 생업으로 돼지까지 키웠으니. 얼마나 힘들었으면 '오늘, 살 수 있는 힘을 주세요'가 아내의 기도였다."
―'미친 짓'이란 소리 들으실 만하다.
"그래도 힘이 나더라. 시행착오 끝에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나무들과 내 손이 갈 때마다 푸르게 변해가는 황무지가 보이는데 기뻐서 미치겠더라. 밀감이 열리고, 씨앗을 뿌려 키운 소철이 자라고, 야자나무 묘목들이 쑥쑥 자라고…. 분재로 옮긴 나무들도 저마다 고유의 수형을 뽐내며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분재예술원'이란 이름으로 연 정원은 초반부터 상당한 화제가 되었다.
"장쩌민 주석처럼 분재를 알아보는 중국·일본 인사들이 들러줬기 때문이다. 덕분에 매해 입장객이 30~40%씩 늘었지. 욕심이 나서 더 많은 자금을 투자해 정원을 넓히고 돌담을 높이고 돌문을 만들었다."
―그러다 IMF 사태를 맞았다. 경매처분을 통고받고 최대 위기에 놓였다.
"헐값에 정원을 사들이려는 사람들이 몰려들더라. 믿었던 지인들이 그들의 브로커가 되기도 했고. 결국 경매됐고, 7년 전에야 되찾을 수 있었다. IMF 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끼친다. 내가 지금까지도 사우나를 안 간다. 사람들 만나는 게 싫어서."
―나무도 나무지만, 정원 돌담 쌓는 일에 전력을 다하신다더라.
"제주에선 바람 막는 일이 나무 기르기의 시작이고 끝이다. 특히 겨울에는 담을 높이 쌓아두지 않으면 나무들이 죄다 동상에 걸린다. 경매를 앞두고도 나는 담을 쌓았다. 경매로 언제 뿔뿔이 흩어질지 모르는 나무들이지만 겨울바람에 시달리게 놔둘 수는 없었다."
― 덕분에 정원이 더욱 아름답다.
"나는 제주의 돌이 좋다. 하나하나는 작고 헐한데, 그것들이 모여서 높고 긴 돌담이 되면 특별해진다. 외국인 여행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
- ▲ 98년 4월‘생각하는 정’을 방문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성범영 원장과 함께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생각하는 정원 제공
군대를 제대한 뒤 가업을 잇기 위해 아버지의 정원에 합류한 주엽(47)씨는 "내 삶의 스승은 부모님이고 나무였다"고 말했다. "매일 아침 정원을 둘러보면서 아버님이 무심코 던지는 나무 이야기를 듣자면 인생의 파노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요." 성 원장은 "진정한 리더는 나무를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나무의 성품을 배우고 자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고도 했다.
―가장 아끼는 나무가 있으신가?
"자식 중 누가 가장 좋으냐고 묻는 것과 같다."
―1200년 된 향나무를 각별히 아끼신다 들었다.
"수령(樹齡)이 워낙 높으니 신경은 쓰이지. 경상도에서 처음 가져올 때 나무 주인이던 90세 할머님이 눈물 글썽이며 아쉬워하셨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나무를 떠나보내는 일이니."
―관람객들에게 나무의 가격을 묻지 말라고 부탁하신다더라.
"그걸 공개하면 나무들이 사람들 손에 남아나지 못한다."
―책에 쓰신 동백 분재 이야기가 재미있다. 중국에서는 온전한 꽃송이를 통째로 떨구는 동백나무 분재를 정치가나 사업가에게 선물하면 실례라는.
"해석하기 나름이지. 우리 정원을 방문했던 중국의 한 교육부 차관은 '공직자는 아쉬워할 때 미련없이 떠나야 한다는 것을 동백나무가 가르쳐준다'고 했다."
―아드님은 제주도 도목인 '담팔수' 얘기를 들려주더라. 매일같이 버리고, 그래서 건강한 나무라면서.
"담팔수 밑에 떨어진 낙엽을 청소하려면 보통 20분은 머물러야 한다. 크고 싱싱한 배를 얻으려면 봄에 열매가 콩알만큼 자랐을 때 미련없이 따줘야 한다. 나무도, 사람도 욕심을 버려야 산다. 물이 순환해야 썩지 않는 것처럼."
―나무마다 인간사에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이라는 '주목'이 오래 사는 비결을 아는가. 일반 나무들은 줄기가 크면 뿌리도 크지만, 주목은 줄기가 커도 뿌리 끝은 실뿌리처럼 가늘다. 그래서 물을 흡수하는 양이 적고 강한 햇빛을 싫어하는 편이라 성장이 늦다.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요소를 동원해 활력소를 만들며 천천히 생존한다. 성장이 늦는 대신 기초를 단단히 다져 오래간다. 빨리 성장하는 것은 그만큼 무너지기 쉽다."
―나무 전문가들은 소나무·주목·향나무를 으뜸으로 친다지만 문외한 눈에는 꽃을 피우는 나무가 예뻐 보인다.
"꽃은 인간의 눈을 즐겁게 하려고 피는 것이 아니다. 눈물겨운 생존의 몸부림이다. 1월에 화사한 꽃을 피우는 능수매화나무를 봐라. 새 가지가 난 자리마다 쭈글쭈글하게 주름이 이어져 있다. 꽃 한송이, 새 잎을 피우기 위해 온몸의 엑기스를 뽑아 올린다. 우리들 인생의 파노라마와 같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