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만난 기쁨

새벽 금강경을 읽고.. 참선과 108배로 새벽을 여는 CEO/ 김영사 대표

정진공 2011. 7. 12. 17:00

입사 9년만에 '밀러언셀러의 여왕'으로

 

 

 

 

1989년 1월,김영사 창립자인 김정섭 대표가 조회 시간에 '폭탄선언'을 했다.

"오늘부터 김영사의 사장은 박은주 주간입니다. 한결 같은 마음으로 박 주간,아니 박 사장을 잘 보좌해 주세요. "

서른두 살짜리 처녀에게 회사경영을 완전히 맡기겠다는 것이었다. 사전에 아무런 언질도 없었다.

주간 자리를 맡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출판사 편집자로 '활자밥'을 먹은 지 9년 만에

'출판사관학교'의 수장이 되다니….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러나 조회가 끝날 때쯤 마음을 고쳐먹었다.

'꿈꾸던 것들을 마음껏 펼칠 기회가 왔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출판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박은주 김영사 대표(52).그는 그날부터 '개선(改善)의 여'으로 변신했다.

우선 '미스 리,미스 박' 같은 차별적 호칭을 없애고 이름을 부르게 했다.

후배나 동료,거래처 관계자 등 모두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도록 했다.

출판사 특성상 편집부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생기는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지원 부서 직원들의 사기와 자부심을 북돋워주는 조치도 쏟아냈다.

직원이 함께 청소
하는 게 그런 혁신 사례 중 하나다.

아침마다 선임 직원들이 솔선수범해 정원을 쓸고,대걸레질을 하며,고무장갑을 끼고 화장실을 청소한다.

어느 날 김영사를 방문한 현각 스님은 활기차게 청소하는 직원들과 손길 닿는 곳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회사를 보고

"참 대단해요"를 연발했다.

'시골 의사' 박경철씨도 "자유와 정돈이 공존하는 공간"이라며 김영사의 기업문화를 극찬했다.

직원들이 자율적이고 활발하면서도 분명한 기준과 원칙을 갖고 있는 회사.

이것이 '박은주 스타일'의 시발점이다.


#5일 걸릴 결정 5분 만에 오케이

그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 '카멜레온 경영''스피드 경영'만큼 명쾌한 것도 없다.

그는 남들이 평생 한 번 만들기도 힘든 밀리언셀러를 3권이나 기획했다.

사장 취임 후 첫 작품이 김우중 전 대우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였다.

이 책은 국내 단행본 사상 최초로 6개월 만에 100만부를 넘어섰다.

'최단기간 · 최다판매'라는 기네스 기록까지 남겼다. 누적 판매량은 180만부.15개국에 저작권도 수출했다.

156주 연속 베스트셀러를 차지한 에릭 시걸의 《닥터스》는

200만부 판매 기록을 세우며 '박은주표 기획'의 저력을 보여줬다.

또 다른 밀리언셀러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은

세 번이나 번역의 시행착오를 겪은 뒤 번역자를 코비의 '리더십 워크숍'에 직접 참여시켜 완성도를 높였다.

50만부 이상의 베스트셀러는 수두룩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신화는 없다》도 80만부 이상 팔았다.

대통령선거 기간뿐만 아니라 취임 이후까지 주문이 폭주하는 바람에 밤샘을 밥먹듯했다.

한국 출판계를 강타한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와 900만부 이상 팔린 어린이 학습서 '앗! 시리즈'도

그의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그는 자기 변신에 강한 '카멜레온 방식'으로 수많은 양서를 기획하고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책을 만들 때는 '독자'로 변신하고,기업을 경영할 때는 '직원'의 마음으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객관화하는 것.

한 해에 200종이 넘는 책을 만들면서 그 때마다 그는 독자 입장으로 돌아간다.

200권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자 다른 200명의 눈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그는 김영사의 색을 '투명한 물빛'이라고 정의한다. 세상의 모든 빛을 다 품되 자기 색을 내세우지 않는 물.

김영사라는 투명한 호수에 비친 세상을 책으로 만들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독실한 불교신자이면서도 종교에 관한 모든 문을 열어놓는다.

진화론자 리처드 도킨스가 과학으로 종교를 비판한 《만들어진 신》도 펴냈고

광염교회의 이웃 사랑을 소개한 《감자탕 교회 이야기》도 냈다.

정치적 편견이나 종교적 틀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책과 대화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그는 출판기획자의 첫 번째 덕목으로 '자기의 잣대로 판단하지 않는 균형감각'을 꼽는다.

출판계는 "다른 곳에서 5일 걸릴 일이 김영사에서는 5분 만에 결정된다"고 말한다.

그만큼 의사결정이 빠르다. 생각은 깊게 하고 결정은 과감하게 내리는 기술 덕분이다.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를 가장 많이 갖고 있어 '김영사는 돈 되는 책만 만든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카멜레온과 스피드 경영의 장점을 조화시킨 출판 시스템을 알고 나면 금방 고개가 끄덕여진다.

1년에 외부에서 김영사로 들어오는 원고는 1000건이 넘는다. 그 중 출간으로 이어지는 것은 1% 미만.

그만큼 검증 과정이 철저하다. 내부 기획물도 디자인,카피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넘기지 않는다.


#주말엔 '몸빼' 차림으로 텃밭일

이 같은 완벽주의로 인해 주말이면 머리를 비우는 일에만 몰두한다.

강원도 백담사 근처의 인제 용대리에서 태어난 그는 워낙 자연을 좋아해 집도 '전원'에 마련했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그 집에서 '아줌마'처럼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텃밭을 가꾸는 것이 그에게는 최고의 휴식이다.

밭에서는 '몸빼 바지'에 밀짚모자 차림으로 감자와 고추를 심고 상추 잎을 딴다.

그는 매일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108배로 하루를 시작한다.

두 손을 한데 모으고 몸을 구부려 온전하게 자신을 낮추는 시간.26년째 몸에 익은 습관이다.

5시부터는 방석에 무릎을 꿇고 앉아 상반신을 곧추세운 채 《금강경》을 읽는다. 곧이어 명상에 든다.

탐욕이나 이기심에 물들지 않고 청정하게 살기 위한 자세를 가다듬으며 자신을 돌아본다.

그는 이처럼 날마다 명상 수행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구도자형 CEO'다.

남들이 '베스트셀러 제조기'라고 부르지만 오히려 '숫자의 함정'을 경계한다.

잘 팔리는 책에만 매달리다 보면 좋은 책을 놓치기 십상이다.

일이나 인간관계가 뜻대로 되지 않아 고민하고 화내고 욕심 부리는 것도 다 집착 때문이라는 것을 그는 안다.

그래서 아침마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오전 7시쯤 서울 가회동 사무실에 도착해 차를 마시며 하루 일정과 계획을 점검한다. 그때부터는 '회사 인간'이다.

한솥밥을 먹는 '가회동 식구'들과의 조회시간.그는 직원들과 일일이 눈을 맞춘다.

그리고 지시사항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대신 간단한 체조를 하고 모두가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1분 스피치'는 15년째 이어오는 전통이다. 그는 "처음엔 마음의 벽을 허물기 위해 시도했는데

서먹서먹해하던 직원들이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털어놓게 되고,듣는 사람도 동료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며

"남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할 뿐더러 서로 친해지는 데도 그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업무가 시작되면 그는 또 '혁신가'로 바뀐다. 그의 혁신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출발했다.

새로 들어온 사원에게 나눠주는 '신입사원이 알고 실행할 일'부터 그랬다.

'컵은 개인용을 사용하고,각자 씻어서 보관한다. 우편물 포장 글씨를 또박또박 쓴다.

모든 사람에게 밝은 표정으로 큰소리로 인사한다. '

'뭐 이런 것까지 규칙으로 만들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소하지만,그의 생각은 다르다.

"사소해 보이는 일은 그렇게 보일 뿐이지 결코 사소하지 않죠.사소한 일 하나가 하루종일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는 법입니다.

행복한 일터,깨끗한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만든 책으로 독자와 세상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