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LIFE

깨달음의 장 (깨장) 정토수련원 문경에서의 하루

정진공 2012. 6. 27. 13:59

동산불교대·본지 명사초청특강 김홍신 작가
“행복, 조건에서 찾지 말고 마음 안에서 느껴라”
2011.07.26 13:38 입력 발행호수 : 1106 호 / 발행일 : 2011-07-27

 

▲ 김홍신 작가는 “열등감에 휩싸여 자신의 참가치를 외면하는 순간 마음이 불행해진다”고 말했다.

 

 

“세상이 복잡한가요?”


첫 마디가 질문이다. 김홍신(65, 건국대 석좌교수) 작가가 물었다. 동산불교대학·동산불교대학총동문회와 법보신문이 7월16일 공동 주최한 명사초청특강에서다. ‘불교의 행복론과 인생사용설명서’ 강의를 듣고자 동산불교회관을 가득 메운 불자 300여명은 하나같이 다 안다는 듯 “마음이 복잡하다”고 답했다.


“꼭 물어야 답한다”며 김 작가는 웃었다. 묻지 않으면 모두가 ‘너’를 탓한다고 했다. 그래서 세상이 복잡해졌다. 남보다 못하다며 ‘나’를 ‘너’와 비교하다보니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이 못마땅한 거라 했다. 스스로 보잘 것 없다고 여기는 순간 세상은 따분하고 지겹고 짜증나는 대상으로 전락한다는 거다. “행복 끝 불행 시작”이랬다.


“세상이 왜 불행한가요? 스스로 사회적 가격이 낮다고 여기고 열등감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권력, 명예, 재물, 인물, 학연, 지연, 가족 등을 남들과 비교하며 자신을 보잘 것 없다고 자탄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복잡해서 세상이 불행


어쩔 수 없단다. 질투, 분노, 미움 등은 당연한 거라 위로했다. 김제 마늘 밭에서 나온 110억원 뉴스를 접하면 직접 관련 없는 돈인데도 누구나 기분 나쁘다고 했다. 잘못이 아니란 얘기다. 조건에 반응해 온갖 조화를 부리는 마음에 걸려 넘어지는 게 문제였다. 그는 30분간 비행기에서 마음고생한 일을 털어놨다. 착륙 직전 비행기가 휘청대는 바람에 마음도 들쭉날쭉했다고.


“별 생각 다 들었습니다. 다신 비행기 안 탈거야, 이렇게 죽으면 개죽음이다, 진짜 구명복이 있을까, 애들한테 통장 비밀번호라도 가르쳐 줄 걸……. 다행히 착륙해 내리려고 할 때 뒷자리에 아직도 자고 있는 사람이 있더군요. 옆 사람이 깨우니까 눈비비고 내렸습니다. 환장하겠더군요. 하하하.”


그는 끊임없이 청중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행복은 어디 있나요?” 반사적으로 모두 “마음”이라고 했다. “꼭 물어야 마음이라 한다”며 좌중을 웃겼다. 그는 이내 “그런데 왜 모두 마음 밖에서 찾느냐”고 되물었다. “행복은 지금 내 마음 속에 있습니까?”
행복이 ‘마음 밖’에 있다고 콕 집었다. 돈과 명예, 권력, 비싼 집과 좋은 차가 행복을 가늠하는 척도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중요한 사실은 남이 아닌 바로 자신이 행복을 만든다는 것.


사회적 가격이라고 부르는 모두가 과연 목숨보다 중요할까. 흉악범이 흉기를 들이대며 재산과 목숨 중 하나를 내놓으라고 한다면 그때야 목숨이 소중하다는 것을 절감한다고 했다. 그는 재산을 버리면서까지 악착 같이 살려는 이유가 오늘보다 내일이 좋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있단다. 가능성이 희망이고 희망을 풀어 말하면 ‘행복’이란 낱말이랬다.


이 낱말엔 함정이 있다. 보람이 빠지면 짧은 만족이나 쾌락에 불과하다고 경계했다. 욕심의 정체를 알라고 했다. 좋은 집, 차, 많은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희망이고 노력하지 않고 뭔가 얻어지길 바라는 게 욕심이었다. 욕심은 밥 많이 먹고 운동도 안하면서 뱃살 빠지길 바라고, 공부 않고 좋은 대학 가려고 하는 요행에 대한 간절함이었다. 슬픔, 좌절, 걱정 없이 행복해지려는 것도 욕심이라고 그는 말했다. 좌절과 고통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일어서면 보람은 따라온다고 했다. 자신을 예로 들었다.


1947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논산에서 자란 그는 건국대 국문과 졸업 뒤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상임집행위원으로 시민운동을 했으며 15, 16대 국회의원 당시 각종 언론, 시민단체, 기관에서 8년 연속 그를 1등 의원으로 선정했다. 1981년 장편소설 ‘인간시장’은 국내 역사상 최초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고 ‘해방영장’ ‘난장판’ ‘대곡’ ‘풍객’ ‘내륙풍’ ‘칼날위의 전쟁’ ‘삼국지’ ‘초한지’를 비롯한 128권의 저서를 썼다. ‘인간시장’은 560만부가 팔렸다. 엄청난 돈을 벌었다. 의원 활동을 하면서 권력도 누려봤다. 그는 “다 놓고 보니 허망하더라”고 토로했다.


인생 스승 법륜 스님과 인연을 꺼냈다. 스님은 37년 6개월, 반평생 태운 담배도 끊게 했다. 2002년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깨달음의 장’을 경험한 뒤 손도 안대고 있다.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안정시킨 체험은 어느 행복과 견줄 수 없었다. 예비 며느리도 ‘깨장’에 다녀오게 한 뒤 아들과 결혼시켰다. 그는 지금도 주변에 정신이 힘든 이에게 강권하고 다닌다.


어느 날 스님이 회초리를 들었다. 국회의원으로 좋은 평가를 받던 시절이었다. 스님은 “우리가 버린 발해 역사를 우리 민족사에 남기는 게 의원 열 번 하는 것보다 낫다”고 꾸짖었다. 그는 “우리가 버린 역사를 고증해 천년의 침묵을 깨리라”고 작정했다. 스님을 따라 9일 동안 4300km를 횡단하는 역사 기행을 떠났다.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밤 12시가 넘어야 잠자리에 드는 강행군이었다. 구속을 각오하고 역사 궤적을 추적하기도 했다. 중국인처럼 보이기 위해 허름한 차림을 하고 중국산 빵을 씹으며 감시 초소를 지나 다녔다. 5년 동안 취재해 500여권의 자료를 모았다. 꼼꼼하게 읽고 정리하면서 발해 역사가 처참하게 지워졌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옥살이를 각오했다. 3년 동안 집필했다. 하루 12시간 이상 책상에 앉아 매일 200자 원고지 20매 이상 썼다. 새벽 3시가 지나야 잠들고 아침 10시에 일어나 다시 하루 종일 책상에 매달려 원고와 씨름했다. 만년필로 원고를 쓴 탓에 오른팔과 어깨가 마비돼 온갖 치료를 받았다. 머리카락은 빠졌고 시력은 나빠졌다. 그러나 ‘대발해’를 쓰는 동안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이 생겼다. 2006년 12월7일 새벽 2시45분, ‘대발해’ 원고 1만2000장을 탈고했다. 7개월 동안 1만2000장에서 3500장을 버리고 1000장을 새로 썼다. 그렇게 9500장으로 ‘대발해’를 10권으로 묶었다.

 

 

“이 고통을 다 겪고 보니 이게 행복이더군요. 오늘 죽어도 부끄럽지 않은 책이 ‘대발해’입니다. 황홀한 행복입니다. 보람이 있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요즘 그는 다시 고통과 좌절 위에 섰다. 죽기 전 쓰고 싶은 책이 ‘고조선’과 ‘대붓다’다. 그런데 스님과 붓다를 공부할수록 ‘대붓다’를 쓸 수 있을지 고민이란다. 그 경지를 담아내기 어렵다는 고충이었다. 인도 10대 성지순례를 세 번이나 다녀왔지만 스님과 붓다처럼 맨발로 고행하는 순례를 다시 계획 중이다. 환갑이 넘은 그는 마음밭에 고통과 좌절의 씨앗을 심어 ‘행복싹’을 틔우려 하고 있다.


누구를 탓할 문제가 아니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은 바로 본인이 만든 모습이다. 방향만 살짝 틀라했다. 단박에 여태 살아온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없는 까닭이다. 국내 어느 대학 화장실에 적힌 “우리 어머니들이 청소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깨끗한 환경을 만들 듯 한 생각 살짝 바꾸라고 했다.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세상이라는 모든 조건에 마음이 휘둘려 주인 자리를 뺏기지 말라 했다.


“진정 당신은 가격이 낮을까요? 분명한 것은 세계 67억 인구 중 영혼과 육신이 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날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코를 막고 숨을 참으면 30초를 넘기기가 어렵습니다. 너무 당연해서 잊고 있었던 사실을 뒤늦게 깨닫지요. 훗날 병원에서 산소 호흡기를 끼고 숨을 쉴 때야 숨 쉬는 게 행복했다는 걸 알게 되면 이미 행복을 놓친 겁니다. 심장이 멈추지 않고 숨이 끊이지 않는 기적을 우리는 매일 일으키고 있습니다. 행복은 지금 내 마음속에 있습니까?”


순간순간 선한 행동이 보살

 


그러나 그는 나만 홀로 소중하다는 생각을 경계했다. 내가 존귀하듯 나 아닌 모든 존재가 존엄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자비와 사랑의 출발이 이 지점이며 “인간의 향기는 인간애를 발휘하는 순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훌륭한 스승과 도반을 만나고 용서하는 마음과 미움을 포기하는 법을 배우길 바랐다. 공짜로 숨 쉬고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의 기적을 감사하고 인생을 즐기길 권했다.


10분 웃고 사랑하면 10분 예수님, 10분 부처님이지만 찡그리고 미워하면 악귀, 마귀라 했다. 소박하게 먹고 생각하고 절약하며, 행복을 나누며 살라 했다. 살아있는 오늘을 감사하고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온다”고 말하자 했다.


“그 동안 남들에게 뒤지지 않으려 일만 하며 살았습니다. 한 번 뿐일지도 모르는 인생 근사하게 즐기다 가세요. 다만 뭘 즐기느냐가 중요합니다. 보람이 있어야 하고 보람이 있다면 기쁨이 절로 따라옵니다. 이게 바로 행복입니다. 보람이 없다면 쾌락이나 짧은 만족에 불과합니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