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옆엔 소싸움으로 유명한 인구 5만 여명의 작은 고을이 하나 있다. 경상북도 청도군이다. 이 외진 마을에서 지난 1년간 3만 여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한 극단이 있다면 믿겠는가. 그 주인공은 경북이 선정한 예비 사회적기업 '철가방극장'이다.
철가방극장은 지난주까지 45주 동안 티켓링크 예매율 1위를 기록했다. 마케팅에 밝은 대학로의 무수한 공연장과 세종문화회관 같은 대형 공연장을 작은 마을의 60석 규모 극장이 제친 것이다.
신화 창조의 주인공은 원조개그맨 전유성 씨(63)와 개그맨 지망생들이다. 이들은 구석진 시골, 공연문화의 불모지에도 시장이 있다는 걸 증명해냈다. 또 대학로의 다른 개그맨지망생들이 생계비 걱정하며 무대에 설 때 급여 받으며 무대에 선다.
비결에 대해 전유성 철가방극장 대표는 "코미디 공연은 대학로나 도시에 가야 볼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깬 덕분"이라며 "우리가 만약 서울에서 시작했으면 지금도 고생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20일에 개관해서 45주째 티켓링크 1위한 것도 도시에서 안 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역발상은 적중했다. 이 시골 극장으로 다른 시골의 관객이 '고무신' 신고 몰려들었다. '세상의 공연이란 공연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 같은 모양새였다. 그는 "농부 아저씨들 같은 분이 제천에서, 대구에서, 전국 곳곳에서 왔다"며 "그게 신기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철가방극장의 성공엔 여러 '사회관계'가 작용했다. 전유성 대표는 지금껏 황현희 등 많은 개그맨지망생을 무료교육으로 키우며 후배들과 신뢰 관계를 쌓았다. 이들의 '웃음건강센터' 아이디어가 농촌마을개발사업으로 선정되면서 정부, 지자체와 지원 관계를 만들었다. 공연을 본 적 없는 시골 관객들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경제가 한국에서 태동하고 있다. 소위 '사회적 경제'라 불리는 영역이다. 사회적 경제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성이 곧 경제 행위의 근간인 경제를 뜻한다.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이 그 주체다. 국내에선 한살림, 아이쿱 등 생협이 농수산물 등 먹거리 중심으로 사회적 경제 형성을 주도해왔다.
여기에 정부와 지자체가 동참했다. 사회적기업 육성법, 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해 사회적 경제 육성에 나선 것이다. 사회적기업육성법 시행 5년만에 사회적기업은 고용노동부 인증 680곳, 지자체 선정 예비 사회적기업 1500여 곳 등 1200여 곳으로 늘었다. 매출 총액은 2007년 464억 원에서 2010년말 3765억 원으로 3년만에 8배가 늘었다. 오는 12월 협동조합 기본법이 발효되면 5명만 모여도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게 된다.
5년 전 사회적기업 육성법 제정 운동 주도자 중 한 명이었던 이은애 사단법인 씨즈 대표는 "이제는 시민이 함께 기반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5년 동안 정책, 제도적 기반은 충분히 갖춰졌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민간에서 여러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자활공동체, 마을기업들이 사회적 경제 네트워크를 함께 만들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며 "이들이 함께 연대적 경제 기반을 만들면 생산자가 아니더라도 보통 시민이 소비를 통해 좀 더 수월하게 사회적 경제에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의 참여가 사회적 경제를 먹거리에 이어 여가, 교육, 주거 등 전 삶의 영역으로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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