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자성과 쇄신 결사’ 추진본부장인 도법 스님과 재가불자 단체 ‘우리는 선우’ 대표를 맡고 있는 성태용 건국대 교수가 19일 오전 불교 개혁을 모색하기 위한 대담을 하고 있다. 조용철 기자 |
도법 스님=불교의 존재 이유는 뭇 생명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전제로 사상의 이해와 실천방법론이 재정립돼야겠지요. 첫째는 수행과 삶, 깨달음과 삶이 하나가 되지 못해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둘째, 제도적 문제입니다. 종헌종법에 종단은 사부대중(四部大衆)으로 구성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종헌 제3장 종단 제8조-본종은 승려(비구, 비구니)와 신도(우바새, 우바이)로서 구성한다]. 그런데 스님들 중심으로 돼 있지 사부대중 공동체로서 종단이 운영될 수 있도록 돼 있지 않습니다. 이번 기회에 제도를 확실히 정립해 역할을 나눠야 합니다. 출가자는 정법수행과 전법교화 역할을 전담해야 하고 재가자는 관리운영과 신행활동 부분을 담당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근본적인 문제들이 바로잡아집니다.
성태용 교수=50년 전, 종헌종법이 만들어질 당시는 혼란스러운 과도기였어요. 그리고 종헌종법의 개폐(改廢) 문제도 정치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논의되곤 했습니다. 이 기회에 시대정신에 맞게 손봐야 한다고 봅니다. 도저히 지키기 어려운 계율도 고칠 필요가 있습니다.
도법=그동안 총무원장이 바뀔 때마다 늘 개혁을 주장해왔습니다. 그런데 잘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중심에 불교가 아니라 종권(宗權)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종권을 잡을까, 지켜낼까 하는 관점으로 개혁을 하려 했기 때문이지요. 불교의 본령으로 문제를 풀어야 해답이 나옵니다. 그동안의 개혁은 종권을 중심으로 소수가 밀실에서 논의해 왔습니다. 이번에는 종권이 아니라 불교, 소수가 아니라 사부대중, 밀실이 아니라 광장에서 공공연하게 토론하고 모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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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법=지금 자승 총무원장 스님과 집행부는 어느 때보다 위기의식이 높습니다. 그래서 자성과 쇄신 결사 추진본부도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본사 주지들이나 중앙종회로 내려가 보면 전혀 감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행부가 더 대범하고 과감하게 마음을 열어놓고 본사 주지들과 중앙종회를 설득해야 합니다. 재가자들의 자각도 꼭 필요합니다. 지금 결사운동은 아래로부터 시작돼 대중공사로 가야 하는데 위로부터 시작된 측면이 있어요. 필요하다면 집행부가 종권을 내려놓을 수도 있는 겁니다. 그래서 문제가 풀린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성태용=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실권을 쥔 집행부 비구스님들이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들이 많습니다.
도법=가능합니다. 제가 원장스님과 맞서서라도 그렇게 되도록 하겠습니다. 문제는 대안 없이 내려놓을 때 발생하는 혼란입니다. 집행부를 교체한다고 풀릴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대충 보게 되면 자승 총무원장이 퇴진하고 새로운 종권세력이 나서야 합니다. 그러나 제대로 보면 대부대중이 주체가 되어서 성찰과 쇄신의 과정을 긴 호흡으로 밟아가야 합니다. 속내에 종권 욕심이 있는 다른 세력이 들어온다면 문제가 되풀이됩니다. 종권 싸움이 아니라 한국 불교의 미래를 보고 접근해야 합니다. 풍랑 만난 배가 기울어져 가고 있는데 키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회자=재가불자들, 특히 남성불자인 우바새들의 역할이 절실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한국 불교는 보살불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성 신도 위주입니다.
성태용=재가자들의 역할과 의무에 대한 인식이 너무 없습니다. 지금껏 종단 운영을 스님들이 주도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고 역사적으로는 불교를 탄압했던 조선 성리학의 영향이 크지요. 그간 한국 불교는 살아남기 위해 급급했어요. 불교가 살아남고 스님들 보존하는 일이 불사의 전부였지요.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스님들, 즉 출가중은 좀 더 아래로 내려와야 하고 일반 불자들, 즉 재가중은 좀 더 위로 올라와야 합니다. 그래서 동등해져야 개혁을 잘 수행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수행을 게을리하는 스님들에게는 재가중들이 먹을 것을 끊어버렸습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1994년 법란 때 제가 박광서 교수 등과 함께 일주일간 전국을 돌며 지성인 419명을 모은 적이 있습니다. ‘재가연대’ ‘우리는 선우’ 등 여러 재가자들 그룹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도법=종권 방어 세력, 종권 도전 세력에 휘둘리지 않는 순수한 불자들이 나서주세요. 불교의 본령을 보는 사부대중들이 나서주세요. 얼마든지 장이 열려 있으니까요. 우리 조계사 마당에 야단법석을 열어 놨습니다. 조계사가 광장을 열어놓고 용광로 역할을 하겠습니다. 우리 결사추진본부에서 뒷바라지하겠습니다. 아마 100일만 뜨겁게 토론하면 해답이 찾아질 겁니다. 예를 들어 ‘승려 도박문제와 불교공동체의 오늘과 미래’도 좋은 토론 주제일 겁니다. 조계종단 50년사에서 다시 없는 기회입니다.
성태용=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투명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계는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우리 불교계가 더 심합니다. 하루 속히 투명해지지 않는다면 재가중들이 등을 돌릴 겁니다. 재가중들도 스님들을 나무라기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불교신자라고 하면서도 대부분 불교적인 삶을 살지 않고 있어요.
사회자=‘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과세원칙이 있습니다. 현재 종교단체는 비과세인데 사찰 재정의 투명성을 위해 법인세를 내야 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22%까지는 아니더라도 1%라도 내야 수입과 지출이 잡혀서 건전해진다는 겁니다.
도법=종단의 주체성, 자율성을 해칠 수 있는 민감한 문제입니다. 국가 권력에 예속될 우려도 있습니다.
성태용=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재정이 투명할 때 정권에 당당해질 수 있고 신도들의 시주도 더 많이 들어올 것입니다. 수입이 이런데 지출이 이렇다 라고 제시하면 신도들 신심이 더 생기고 더 많은 자발적 기부를 하게 될 것입니다. 종교인 조세제도는 꼭 필요합니다. 재정의 투명성만큼이나 법의 투명성도 중요합니다. 우스갯소리로 저는 깨달음 측정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데요(웃음). 도대체 까마귀 암수 가리는 것보다 힘든 일인데 누가 법력이 높다, 누가 도력이 높다 하면서 중생을 현혹합니다. 고쳐져야 합니다. 우리 중생들도, 시민들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깨달음도 민주화해야 합니다.
도법=맞습니다. 우리 불교계가 속히 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부처님은 ‘나는 신과 인간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대들도 신과 인간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고로 전법을 떠나리라’고 전법선언을 하셨습니다. 신의 굴레가 뭡니까? 부처님 당시는 구원의 주체가 신(神)이었습니다. 부처님에 의해서 ‘야, 그런 신 없어, 네 운명의 주체는 너 자신이야. 구원의 주체도 너 자신이야’. 이렇게 해서 신의 굴레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켰습니다. 인간의 굴레는 뭐냐? 소위 종자가 따로 있다는 거 아닙니까? 양반 종자, 쌍놈 종자! 카스트(계급)제도잖아요? 부처님은 누구나 양반처럼 행동하면 양반이고, 쌍놈 행동하면 쌍놈인 것이라고 만민평등을 선언합니다. 신의 구원? 그런 거 없다는 주체적 인
간을 자각시켰습니다.
성태용= 그래서 21세기에도 불교가 통한다는 거죠.
도법=불교란 본래 무소유가 원칙이지만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에게는 많은 사찰재산과 권력까지 주어졌습니다. 재물이나 권력은 우리 불교의 본령과 관련 없다고 내칠 게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재산과 권력을 중생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 시대의 진정한 공양입니다.
사회=현대인들은 탐진치(貪瞋痴),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을 제도화했습니다. 제도화된 욕망은 도덕성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불교계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성태용=그간 우리 불교계는 반 쪽짜리 불교였습니다. 한쪽 날개가 부러져있었어요. 재가 불자들의 위상과 권리가 높아져서 한쪽 날개를 회복해야 합니다. 재산관리의 민주화, 수행의 민주화가 필요합니다. 스님들 중심의 독재적인 관리는 부패를 부릅니다. 1만2000의 조계종 스님들, 그중 소수의 비구들이 독점 관리하는 체계가 이 기회에 합리적으로 바뀌기를 바랍니다.
도법=힘겹게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을 스님들이 염려하고 위로해야 하는데 세상이 스님들을 걱정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번 초파일에는 자기 욕망을 기원하는 등을 켜지 말고 부처님 좋아하실 등을 켭시다. 한국 불교의 미래를 비추는 등을 켜서 부처님께 선물로 드립시다.